금융당국이 기술특례상장의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경기 둔화로 타격을 입은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한 것이다. 투자자 보호와는 상충될 수 있는 조처인 만큼 당국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다음달까지 현행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20일 밝혔다. 금융위는 “최근 벤처투자 둔화세가 자칫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 신기술 개발·사업화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술특례상장은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아도 유망한 기술을 갖춘 기업이라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통상적인 상장 절차와 달리 재무나 시가총액에 관한 양적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질적인 측면에서 정확하게 평가하는 게 심사 절차의 핵심이다. 제도는 2005년부터 운영됐으며 지금까지 이를 통해 184개 기업이 상장했다. 2016년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신라젠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보완 방안의 핵심은 기술 요건 완화다. 지금은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중 두 곳의 평가를 신청해 한 곳에서는 BBB등급 이상, 다른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는 국가적인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1개 기관에서만 평가를 받아도 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밖에 중견기업 자회사의 특례상장 제한도 일부 풀어줄 계획이다.
문제는 느슨한 기술 심사로 인해 투자자 보호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칫 기술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이 특례상장에 성공할 경우, 당국이 충분히 검증했다는 인식하에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되는 탓이다. 이는 기술특례상장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기술기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벤처투자 감소는 고금리와 경기 둔화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적 접근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1분기 국내 벤처투자는 총 9천억원으로 1년 전(2조2천억원)보다 60% 줄었지만, 당장 2년 전(1조3천억원)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크지 않다. 2021년과 지난해 상반기는 ‘유동성 잔치’가 한창이던 시점이다. 이 사무처장은 “장기 트렌드를 보면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고,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데 한국만 호들갑 떨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며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국가적인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처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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