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의 업무를 아이티(IT) 회사에 더 많이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칠 전망이다. 은행대리업을 도입해 우체국에서 은행 대출업무를 대리하게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모두 은행권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취지인데, 리스크 관리에 대한 금융당국과 은행 양쪽의 부담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어 쉽지 않은 과제가 될 전망이다.
8일 금융위원회 발표를 보면,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전날 은행권·학계와 함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제11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금융회사의 업무위탁 제도를 개선하고 은행대리업을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올해 3분기 중에 마련할 계획이다.
일단 은행이 다른 회사에 위탁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확대한다. 은행과 핀테크 간의 협업을 늘린다는 취지다. 현행 규정상으로는 은행의 본질적 업무를 제외하고 위탁이 가능하다. 본질적 업무에는 예·적금 계좌의 개설·해지와 입금·지급, 자금 대출, 외국환, 채무보증 등이 포함된다. 금융위는 본질적 업무의 범위를 좁히는 동시에, 본질적 업무 중에서도 일부는 인허가를 받은 사업자에 한해 위탁 가능하게 할 전망이다. 금융위는 비본질적 업무로 재분류할 만한 본질적 업무로 예금계좌 변경·해지 등과 관련된 문자메시지·이메일 발송 서비스를 들었다.
은행대리업을 인가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를 위해 예·적금을 받거나 대출을 해주는 등 은행의 고유업무를 제3자가 대리할 수 있도록 은행법을 개정할 전망이다. 소비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은행권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 한 곳에서 여러 은행을 대리할 수 있도록 1사 전속주의를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한 예로 우체국에서 예·적금 계좌 개설·해지와 대출, 환 등의 업무를 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체국은 현재 업무위탁 형태로 예·적금의 입금과 지급만 하고 있다.
업무위탁 범위가 확대되고 대리업이 도입되면 리스크 관리 체계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일단 보안이 뚫리거나 대출심사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은행과 수탁자·대리점 중 어느 쪽의 책임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여러 은행의 업무를 맡고 있는 수탁자 쪽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수탁자 등에 대한 제재·감독 책임이 추가된다는 부담이 있다. 강영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금융회사가 아니면서 여러 은행의 전문적인 업무를 수탁한 회사의 경우 별도의 의무를 부과하고 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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