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자금조달 구조가 금융당국의 수술대에 올랐다. 이제까지 부동산 사업장이 증권사의 보증을 바탕으로 단기자금시장에서 돈을 조달하는 구조가 만연했다면, 앞으로는 증권사가 직접 장기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전환을 꾀한다는 취지다. 부동산발 금융불안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조처다. 향후 증권사들이 부동산 사업 비중을 줄이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24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과 관련해서 증권사가 보증을 선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장기대출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사업장은 만기가 1∼3개월인 유동화증권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여기에 증권사가 보증을 서는 구조로 굳어져 왔는데 여기에 칼을 대겠다는 것이다. 유동화증권의 만기가 사업기간에 비해 훨씬 짧아 중간에 차환에 실패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때마다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린다는 문제점을 염두에 둔 조처다.
일단 부동산 대출에 대한 증권사 건전성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준다. 증권사의 부동산 대출에 적용되는 위험값을 현행 100%에서 32%로 낮춰준다는 내용이다. 원래대로라면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규제인 순자본비율(NCR)을 계산할 때 자본에서 부동산 대출 잔액을 100% 차감하는데, 완화된 규제가 적용되면 32%만큼만 차감된다. 그만큼 순자본비율이 덜 떨어지는 효과가 난다. 이번 규제 완화는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증권사가 이미 보증을 선 자산유동화증권에 한해서 적용된다. 금융투자협회는 유동화증권 약 4조9천억원이 올해 안에 대출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잔액의 4분의 1가량에 해당한다.
증권사 건전성 규제를 아예 재검토하기로도 했다. 현행 제도가 증권사의 부동산 대출을 억누르는 대신 채무보증을 부추기는 ‘풍선효과’를 일으켰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다. 2019년 이후 금융당국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과 관련된 증권사의 대출에는 위험값 100%, 유동화증권 채무보증에는 위험값 18%를 일률적으로 부여해왔다. 증권사 입장에서 유동화증권 채무보증을 주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시에는 부동산 대출 급증과 이로 인한 집값 거품을 누그러뜨리려는 정책으로 해석됐으나, 결과적으로는 풍선효과만 낳았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금융위는 일단 대출과 채무보증 사이의 규제차익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대출에 적용되는 위험값은 낮추고, 채무보증에 적용되는 위험값은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변제순위나 사업장 특징 등 개별 리스크를 감안해 위험치를 차등화할 방침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중소형 증권사 간의 위험 감내 능력 격차도 감안한다. 올해 안에 세부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새로운 건전성 규제는 증권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작지 않은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특히 자본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채무보증만 해왔던 중소형 증권사들은 아예 부동산 사업 비중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증권업계 전반적으로 부동산 관련 신용공여 규모가 감소할 여지도 있다. 위험값 산출에 부동산 사업장의 개별 특징이 반영되는 만큼 ‘옥석 가리기’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아 보여서 적용 시기는 좀 더 고민해보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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