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성 사우스벤처스 대표(왼쪽부터), 이종섭 서울대 교수, 이성은 클라이밋코인 매니저가 지난달 27일 서울대 경영대학 연구실에서 ‘블록체인과 ESG경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소미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가상자산(암호화폐) 겨울이 깊어지면서 블록체인 생태계도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29일 창간 5주년을 맞아 블록체인 업계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해법의 하나로 ‘블록체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주목해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이에스지 벤처캐피털인 사우스벤처스의 임지성 대표, 디지털 탄소자산 업체 클라이밋코인의 이성은 매니저의 지난달 27일 토론 내용을 간추렸다.
사회: 블록체인과 이에스지는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나.
임지성 사우스벤처스 대표: 시대적 흐름에 두 열쇳말이 잘 들어맞는다. 특히 엠제트(MZ)세대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관심이 많다. 국가의 정책도 기업의 경영도 자연스럽게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이에스지라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가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함께 쓰일 수 있다.
사회: 먼저 블록체인을 통해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이성은 클라이밋코인 매니저: 블록체인과 가장 접점에 있는 게 기후변화 분야 중에서도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에 블록체인이 적용된다면 정보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래는 한 국가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시장을 형성하는 게 궁극적 목적이다. 탄소 배출권을 사고 파는 국제 공조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 정부에 의해 가격이 설정되는 탄소세보다 환경 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민간 중심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활성화하지 못한 탄소배출권 시장이 블록체인과 만났을 때 그 기회가 생긴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장점인 투명한 기록, 상호 합의를 통한 정보 관리, 초국경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 등이 유용하다.
사회: 투자 관점으로도 새로운 기회일 것 같다.
이종섭: 전통 금융 시장에서 녹색채권, 탄소배출권 등 신종 자산에 투자할 기회는 정부 주도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기관 투자자들에 한정돼 있었다. 이때 수요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블록체인이다. 최근 한창 논의되고 있는 토큰증권발행(STO)을 탄소 배출권 분야에 활용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처럼 개인 투자자가 많아 유동성이 높은 곳에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리의 특화 상품으로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이성은: 자발적 배출권을 토큰증권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내에 가두리가 생기고 미국 내에 가두리가 생기면 국가간 자발적 배출권 거래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사회: 사회 분야에서 블록체인의 기여 사례는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이성은: 문제의식을 갖고 등장한 프로젝트들은 많다. 예를 들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소셜임팩트로 구성된 프로젝트인 ‘포지티브 블록체인’에서 공공이익에 기여하는 1000여 프로젝트를 모아 화제가 됐다.
임지성: 기업이 영리 활동을 하다 보면 외부 효과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라는 논의가 생겨나면서 이에스지 경영이 대두됐다.
사회: 가상자산 생태계가 자체 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임지성: 업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투기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전성이 확보돼야 지속가능한 블록체인 생태계에 기대를 갖게 되고 기관 투자자들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사회: 지배구조 문제를 블록체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종섭: 기부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기부금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다 보니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걸 블록체인 기록의 투명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고 여기에 스마트 계약 기능까지 더해지면 원하는 용도에만 기부금을 쓰도록 지정도 가능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으로 운영되는 다오(DAO, 탈중앙화 자율조직)를 통해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섭: 일부 대리인에게 운영을 맡기고 그들을 신뢰해야 하는 주식회사 체계가 아니라, 직접 공통 관심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새로운 조직 개념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다오다. 에프티엑스(FTX) 거래소가 붕괴한 것을 두고 블록체인 업계의 문제라고 하는 건 잘못이다. 에프티엑스가 디지털 자산을 거래했지만, 운영 방식은 전통적인 주식회사 지배구조다.
이성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유관기관 등에서 다오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다. 다오의 정의나 법제도 체계가 정립이 안됐는데도 이런 국제기구에서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력을 촉진시키고 있다.
임지성: 다오를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얘기하면 탈중앙화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게 시작될 때는 중앙화가 필수다. 모두가 자율적으로 합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하면 해결방안을 내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결정 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엔 누군가 책임을 지고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 운영 방식이 자리잡고 난 뒤에 새로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재생산 시스템이 이뤄져 지속성이 보장될 때 다오 생태계가 잘 굴러갈 수 있다.
☞다오(DAO)
중앙관리자의 지시로 운영되는 전통적인 기업 구조에서 탈피해,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으로 운영되는 기업 조직 형태다. 자체적인 토큰 발행을 통해 구성원에게 의결권을 배분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두고 투표한다. 구성원들의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로 토큰이 쓰인다.
사회·정리 선소미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blossomi@coindesk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