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 과정에서 이뤄질) 현물출자를 통한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지분 강화는 (중략)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 올라온 현대백화점의 분할 증권신고서에 있던 문구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정지선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는 반면 소액주주의 의결권은 희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증권신고서에서 소액주주의 지분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줄어드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잦은 배경이다.
이런 문제의 뿌리를 뽑기 위해 앞으로 한국거래소가 상장심사를 더 엄격하게 한다. 인적분할 이후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기업들 스스로 명확히 밝히고 소액주주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지난해 물적분할 규제 강화로 인적분할 악용 사례가 늘어나는 ‘풍선 효과’에 대한 우려가 컸던 만큼 눈길이 쏠린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거래소는 앞으로 인적분할된 회사의 재상장심사 때 소액주주 보호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장심사는 형식적인 요건을 보는 양적 심사와 투자자 보호 문제 등을 평가하는 질적 심사로 나뉘는데, 앞으로 인적분할에 있어서는 후자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물적분할된 자회사의 질적 상장심사가 강화된 바 있다.
인적분할은 기업을 분할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다. 존속회사 주주들이 기존에 소유한 비율대로 신설회사 주식을 나눠 갖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적분할과 달리 존속회사 주주도 신설회사 주식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소액주주가 상대적으로 덜 불리한 측면이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자사주의 마법’이나 현물출자 등 여러 수단을 악용해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거래소가 겨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인적분할 과정에서 현물출자를 이용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경우, 구체적인 지분율 변화를 명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는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이 함께 이뤄질 때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다. 지배주주 지분율이 20%인 ㄱ회사를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쪼개는 경우, 지배주주는 지주회사는 물론 자회사 지분도 20%를 갖게 된다. 지배주주 입장에서 자회사보다는 지주회사 지분이 필요한 만큼, 자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주고 지주회사의 신주를 받는 경우가 많다. 현물출자를 이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지주회사에 대한 소액주주의 지분은 그만큼 희석된다는 문제가 있다. 현대백화점도 이런 계획을 구상했다가 지난달 주주총회 표결에 가로막혀 무산된 바 있다.
‘자사주의 마법’ 악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한다. ‘자사주의 마법’은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 때문에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존속회사가 갖고 있던 자사주 지분만큼 신설회사 지분을 배정받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존속회사의 자사주 지분이 10%였다면, 신설회사에 대한 존속회사의 지분율도 10%가 된다. 지배주주는 존속회사를 통해 신설회사도 손쉽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거래소는 특히 인적분할을 앞두고 자사주를 많이 사들인 기업들의 경우 주주 의견 수렴과 자사주 소각 등의 보호장치를 마련했는지 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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