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은행들의 돈잔치’를 집중 질타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고금리로 인한 이자 장사와 부실 위험 대비 적은 충당금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시중은행들이 존재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주요 시중은행(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15조8506억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자로 벌어들인 돈만 37조9628억원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권이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를 빨리 올리면서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잔액 기준 은행 예대금리차는 2021년 12월 2.21%포인트에서 2022년 12월엔 2.5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말에는 채권 시장 불안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권으로 몰리면서 관련 대출도 급증한 바 있다.
역대급 실적을 낸 은행들은 배당, 성과급, 희망퇴직금 등을 큰 규모로 지급하고 있다. 4대 은행은 지난해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200~300%에 이르는 성과급을 줬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행된 시중은행 희망퇴직자들에게는 1인당 최소 6억원 이상의 퇴직금이 지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돈잔치’ 발언은 시중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낸 수익으로 자사 직원 및 주주들을 위한 몫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새해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금융당국은 부실 위험을 과소평가해 충당금을 덜 쌓은 것도 은행권 최대 실적을 견인했다고 본다. 대손충당금은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등을 대비하기 위해 부실채권에 비례해 쌓아두는 비용이다. 4대 금융지주사들이 지난 한해 새로 쌓은 대손충당금은 총 5조1031억원이다. 전년(3조2511억원) 대비 약 57% 늘어난 규모다.
은행권이 기준으로 삼은 부실채권 비율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 등으로 ‘착시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비율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의 경우 지난해 4대 은행 평균이 0.21%로 전년(0.23%) 대비 오히려 개선됐다.
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위험에 보수적으로 대비하지 않고 낮은 부실채권에 비례해서만 대손충당금을 쌓았다고 보고 있다. 충당금을 적게 쌓은 것이 실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는 시각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은행의 돈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지시하면서 금융당국이 추가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이자 장사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을 포함한 19개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매달 공시하도록 제도를 개선한 상태다. 은행권 금리산정체계의 합리성·투명성도 계속 살펴보고 있다. 은행권 대출금리는 대출기준금리와 가산금리를 더한 후 가감조정금리를 차감해 산출한다. 대출기준금리는 코픽스, 은행채 등 시장금리 영향을 받지만, 가산금리는 예상 손실비용 등을 고려해 은행권이 자체적으로 책정한다.
당국은 대손충당금 제도도 손질을 예고하고 있다. 향후 은행의 예상되는 손실에 비해 대손준비금과 대손충당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은행에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반면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은 당기순이익이나 배당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 법적 근거 없이 필요 이상으로 쌓았다가는 배임이 될 수도 있다”며 “이미 보수적으로 향후 리스크를 평가해 충당금을 쌓고 있는데다가 당국과 사전 교감을 거쳐 충당금 적립 수준을 발표한 것인데 갑자기 대통령 발언이 나오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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