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들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 불린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과 달리 국내 토종 펀드들은 소액주주 및 자산운용사들로부터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는 행동주의자’라는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토종 펀드들 중에도 주가를 띄워 시세 차익만을 챙길 가능성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3월 정기 주총에서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주주제안’이 예상되는 기업으로는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국내 금융지주 7곳(신한·케이비(KB)·하나·우리·비엔케이(BNK)·제이비(JB)·디지비(DGB)지주), 태광산업, 케이티앤지(KT&G) 등이 꼽힌다. 에스엠엔터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주총에서 추천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금융지주 7곳에도 주주환원 확대를 요청한 상태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에 추천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을, 안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는 케이티앤지에 인적분할과 분리상장을 요구하고 있다.
상법상 소수주주권으로서 주주제안은 이사회 개편과 배당 확대 등을 정기 주총 결의 안건(목적사항)으로 상정해 달라고 주주서한으로 발송하는데, 주주제안권 행사에 필요한 지분 요건은 모든 주식회사의 3% 이상, 상장사는 6개월 이상 계속 보유한 1%(자본금 1천억원 이상 상장사는 0.5%) 이상을 보유한 주주다. 여기서 보유주식비율은 주주 단독으로도, 위임을 받아서도, 2명 이상 주주의 공동연합 행사로도 갖출 수 있다. 물론 회사는 ‘특정 사외이사 및 감사 교체 및 추천자 선임’ 등 주주제안을 앞세운 외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대항해 제안을 거부할 수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SM엔터테인먼트에 체계 개편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러면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는 10일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 겸 전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4천228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원래 SM 1대 주주인 이수만의 지분율은 18.46%로, 하이브는 이번 거래로 단숨에 최대 주주에 등극한다. 사진은 10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앞. 연합뉴스
만약 회사가 이런 주주제안을 수용하면 기업 주가는 ‘기업가치 제고 및 배당 확대’ 기대감에 뛰기 마련이고,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이제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주주와 외부 펀드 사이에 지분매집 쟁탈이 벌어진다는 또 다른 기대가 작동하면서 주가는 더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10일 기준 에스엠 주가는 11만4700원으로 지난해 말에 견줘 49.54% 급등했다. 사모투자 운용사 엠비케이(MBK)파트너스가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오스템임플란트 주가도 케이시지아이가 ‘후진적 지배구조’를 지적하며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간섭을 시도하자 올해 들어 35.99% 상승했다.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은 내재 가치 대비 저평가가 된 기업을 분석해 투자 기회를 발굴한다. 그러면서 펀드가 ‘장기투자’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 및 지속가능 성장을 안내하는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거나 대주주 견제를 통해 주주권익 균형·확장을 추구하는 감시자 등이 된다면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펀드들은 연기금의 수탁자 책임활동(스튜어드십 코드)처럼 투자기업의 경영진까지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이익을 누리는 창의적 방안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 소액주주와 자산운용업계는 최근 토종 펀드들에 대해 고무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삼성·에스케이(SK)·현대차 등에 적대적 경영 개입을 시도하면서 ‘먹튀·투기세력’을 불렸던 엘리엇 등 이전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다.
기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토종 펀드들도 앞으로 ‘먹튀’가 아닌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상무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으로 인해) 이번 주총 시즌에서 기업들이 주주제안을 더 수용하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라며 “행동주의 펀드들이 단순히 주가만 띄운 뒤에 주식을 팔고 나가면 안된다. 주주로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주주제안을 하는 펀드들의 영향력·자본력·전문성이 점차 높아질 것이지만 기업의 장기발전과 성장을 훼손하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 (외부 펀드의 공격에 대항하는)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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