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낮추면서 정기 예·적금 상품의 금리는 연 3∼5%대까지 올리고 있다. 7월 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부착된 정기예탁금 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신한은행이 주거래은행인 직장인 김수진(30·가명)씨는 지난 26일 우리은행의 ‘The조은 정기적금’에 가입하고 80만원을 납입했다. 전날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는 뉴스를 본 뒤 시중은행들이 수신 금리를 따라 올리길 기다렸다가 은행연합회 누리집에서 납입 상한액이 높은 상품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을 택했다.
금리가 1% 수준이던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목돈 만들기용 적금은 주거래은행에 들고 나머지 자금은 해외주식이나 펀드에 직접 투자했지만, 올해 들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본격화하며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5월 록히드마틴에 투자했던 자금을 모두 회수한 뒤 연 2% 이자를 주는 토스뱅크 입출금계좌에 이 돈을 모두 ‘파킹’해뒀다. 한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은행들이 너도나도 고금리 예·적금 상품판매에 나서자 언제든지 더 높은 금리를 주는 곳으로 돈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10월 금통위 회의 이후 수신금리가 더 올라서 지금 가입한 상품보다 고금리인 상품이 나오면 언제든 갈아탈 것”이라고 했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본격화하자 한푼이라도 더 많은 이자를 챙기려는 재테크족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주거래은행의 예·적금 상품에 여윳돈을 묻어두는 대신 0.1%포인트라도 금리가 더 높은 상품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매파적’ 금리 인상 기조에 주식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해외 주식에 투자했던 자금을 보다 안정적인 예·적금 상품으로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우리 기준금리가 연 3%까지 오를 걸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의 수신금리도 4∼5% 대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해까지만해도 금융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던 예·적금 상품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5대 은행(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의 예금 잔액은 7월25일 기준 718조8970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6조4479억원 증가했다. 적금 잔액도 같은 기간 38조1167억원에서 38조7838억원으로 6671억원 늘었다. 한달 사이에 예·적금 규모가 7조원가량 불어난 것이다.
고금리 상품을 쫓아 여러 은행에 예·적금 계좌를 개설하는 ‘문어발족’도 늘고 있다. 권다은(30·가명·변호사)씨는 지난 4월 애큐온저축은행에 예금계좌를 만들어 1500만원을 예치했다. 주거래은행은 하나은행이지만 연 2.6% 이자를 준다는 정보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고 가입했다. 5월엔 신용협동조합에서 매달 100만원씩 넣을 수 있는 연 4%짜리 적금에 가입했고, 6월엔 신협의 연 3.6%짜리 정기예금 상품에 1000만원을 예치했다. 지난 달엔 산업은행에서 내놓은 연 금리 3.6%의 ‘KDB Hi 정기 예금’에 1000만원을 넣었다.
은행 ‘환승족’과 ‘문어발족’이 늘며 예·적금 신규계좌 개설 건수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달간 5대 은행에서 새로 만들어진 계좌는 모두 110만 9898건이었다. 7월에는 121만664건까지 늘었다. 신규 납입금액도 4월 25조9192억원에서 7월 48조4828억원으로 급증했다. 4∼7월 5대 은행에 새로 개설된 예·적금 계좌는 438만7809개이고, 같은 기간에 새로 예치된 금액도 137조1065억원에 이른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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