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비지에프(BGF)리테일은 하나은행과 손잡고 입출금부터 체크카드 발급까지 약 50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CU마천파크X하나은행'점을 열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최근 은행가의 화두 중 하나는 오프라인 점포 ‘혁신’이다. 이 혁신의 핵심은 디지털화다. 널찍한 점포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고객들을 상주 은행원들이 한 명씩 응대하는 게 일반적인 은행의 모습이라면, 최근 생겨나는 혁신 점포는 직원 수를 확 줄이거나 없애고 그 자리에 고객 스스로 업무를 볼 수 있는 키오스크나 종합금융기기(STM·Smart Teller Machine)를 들여놨다. 기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는 입출금과 이체 업무 정도만 가능했다면, 에스티엠을 통해서는 신규계좌 개설이나 체크카드 발급 등 통상적으로 창구에서나 처리할 수 있었던 업무도 볼 수 있다. 은행 운영 시간이 끝나는 3∼4시 이후나 주말에 일부 은행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은행들은 디지털화가 영업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소비자 편익도 증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대만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2019년 3월 6743개였던 국내은행 영업점은 올해 3월 기준 5982개로 3년 새 761개 지점이 사라졌다. 5대 은행(케이비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농협)으로 좁혀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450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이 기간 서울에서만 여의동의 4개 지점이 문을 닫았고, 역삼1동·반포1동·잠실3동·도곡2동·신사동·종로1∼4가동·반포본동 등에서 각 동마다 3개점이 없어졌다. 임대료가 높은 강남권에서부터 오프라인 점포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고객들의 온라인 금융 거래가 늘면서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지점을 줄이고 있다. 그러면서 상주 직원을 줄여 적은 비용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디지털 점포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은행들은 디지털 점포가 고객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반 점포가 문을 닫은 자리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대신 디지털라운지 등 디지털 점포를 열어 금융 서비스 제공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기준 5대 은행이 전국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혁신 점포는 총 71곳이다. 무인 디지털 점포와 안내 직원만 있는 점포, 일반 창구도 함께 운영하는 점포를 모두 합한 숫자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무인점포(55개)인데, 기존에 있던 일반 점포를 폐쇄하고 전환한 경우가 많다. 가령 신한은행은 지난해 8월 대구 달성군에 있던 다사점이 문을 닫은 자리를 디지털 무인점포로 대체했고, 우리은행도 지난해 12월 폐점한 서울 강북구 우이동지점이 있던 자리에 올해 3월 무인점포를 열었다. 무인점포에서 고객들은 키오스크와 에스티엠을 통해 스스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신규 계좌 개설이나 상품 상담, 각종 변경 업무나 증서(OTP, 보안카드 등) 발급이 가능하고 은행에 따라서는 통장이나 체크카드 발급, 대출 신청 같은 업무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신분증 확인은 스캐너 등을 통해 원격으로 이뤄지고, 직원과의 상담도 화상으로 진행된다. 아직 해외 송금 등의 업무는 모바일이나 대면 창구에서만 가능하지만, 은행들은 점차 디지털 점포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방침이다.
편의점 안에 입점한 제휴 점포도 있다. 창구 없이 장비만 들여놓으면 좁은 공간에서도 ‘간이 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 디지털 점포의 장점을 활용한 전략이다. 신한은행은 지에스(GS)리테일과 손잡고 지난해 10월 처음 강원도 정선에 제휴 점포를 냈고, 올해 들어 서울 광진구 건대 상권과 경북 경산시 북부동에 2·3호점을 열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서울 강동구 마천동과 올해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 씨유(CU)와 제휴 점포를, 국민은행은 올해 5월 충북 청주시 분평동에 이마트와 제휴 점포를 개점했다.
현장 가보니…사람 없으면 안 돌아가는 디지털 점포
현장의 소비자들은 디지털 점포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까. <한겨레>는 26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하나은행의 디지털 제휴 점포인 ‘하나은행 씨유마천파크점’을 찾았다. 은행 업무가 끝나는 3시 반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장 한쪽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에스티엠 기기가 놓여 있고 ‘스마트 셀프존’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직접 체크카드를 발급받아보기로 했다. 신분증을 기기에 투입해 스캔을 마치자 은행 직원에게서 화상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어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고 본인 인증 절차를 마치자 바로 카드를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떴다. 선택지는 3개로 많지 않았다. 30초 정도 고민하고 있으려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며 화면이 초기화됐다. 다시 인증 절차를 밟고 카드를 선택하고 각종 동의서를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모든 절차를 마치고 카드 발급을 기다렸으나 기기 오류로 카드가 발급되지 않았다. 셀프존 문에 붙은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해 상황을 알렸지만 “기기는 은행이 아니라 별도 업체에서 관리하는데 해당 업체 번호를 당장 확인할 수 없어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결국 고객센터에 문의를 한 시간까지 30분 정도 더 걸렸지만 카드를 발급받지는 못했다. 편의점 직원도 “은행 관련 안내는 맡고 있지 않다”고 했다. 스마트 셀프존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상주 직원이 없으니 기기 고장과 같은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무인점포 시기상조 디지털 점포를 직접 이용해 본 결과, 관련 업무는 모바일 앱으로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층에게는 디지털 점포가 제공하는 편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한겨레>는 오프라인 점포의 주 고객층이라고 볼 수 있는 노년층이 많은 디지털 점포를 방문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신한은행 신림동 지점은 ‘시니어 디지털 특화 점포’다. 많을 때는 하루 400여명이 찾는데 고객 대부분이 60살 이상이다. 지난해 12월 신한은행은 단순 업무 창구는 2개로 줄이고 그 자리에 디지털 키오스크와 에스티엠 등 셀프뱅킹이 가능한 기기를 들였다. 업무별로 어떤 기기를 이용해야 하는지 색깔별로 유도선을 바닥에 그려 안내하는가 하면, 에이티엠 기기의 안내 문구 등도 ‘돈 찾기’ ‘돈 보내기’ 등으로 쉽게 풀어쓰고 버튼도 일반 기기의 3∼4배 크기로 키웠다. 어르신도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고 에이티엠 화면을 눌러가며 업무를 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안내 직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은행 업무를 보는 노인이 많지는 않았다. 안내 직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에게 일일이 “어르신 어떤 일 보러 오셨어요?”라고 묻고 대신 키오스크 버튼을 눌러가며 업무를 처리해주느라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날 주민세를 내러 온 임아무개(76) 할머니는 고지서와 통장, 카드를 들고 쭈뼛쭈뼛 안내 직원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통장에서 20만원을 뽑으러 온 황아무개(81) 할아버지도 “할 줄을 몰라서 직원들이 있는 시간에 은행에 온다”고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어르신들도 은행 직원들도 아직 디지털화에 적응해가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은행의 기대와 다르게 현장의 디지털 점포는 젊은층에는 큰 매력이 없는 반면 노년층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공적 인프라 성격을 갖는 오프라인 지점도 적절하게 공존하는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소비자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대면 창구와 디지털 점포를 병용하거나 디지털 취약 계층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소비자 불편을 덜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