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2481.03에, 코스닥지수는 802.45에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3.9원 내린 1331.3원에 마감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는데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달 중순부터 한달 보름 가까이 국내 주식을 연일 사들이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국내 주식 ‘사자’ 흐름에는 미국계 자금 대거 유입, 주식 저가 분할매수, 공매도 청산을 위한 매수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5조38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올해 코스피에서 주식을 줄기차게 내다 팔던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매수 우위를 보이면서 엘지(LG)에너지솔루션, 삼성전자, 삼성에스디아이(SDI), 현대차,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위주로 쓸어 담았다. 또 ‘태·조·이·방·원’(태양광·조선·이차전지·방산·원전) 종목군을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되고 있다. 태양광·이차전지 업종은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 미국의 정책 혜택 기대에, 조선·방산 업종은 수주 호황 덕에, 원전은 국내 정책 수혜 기대에 주가가 오르고 있다.
8월 들어서도 26일까지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순매수 금액은 3조1977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에 기관이 1조8761억원, 개인이 1조392억원을 각각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급락)하는 동안에도 외국인은 매수세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주에 원-달러 환율이 1340원을 돌파했으나 외국인은 코스피 주식을 44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8월 들어 외국인이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한 날은 이틀 정도에 그친다. 대다수 국내 외국인투자자들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국내 주식·채권을 살 때 별도의 환율 헷지(가격변동성 위험 회피)를 하지 않은 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율 상승 국면에 주식을 사면 환차손을 볼 수 있는 터라 통상 환율 상승기에는 ‘팔자’로 대응하기 마련인데 요즘엔 그와 반대되는 투자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환율이 정점을 통과할 거란 인식에 따라 일종의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용택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우리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에 큰 이상이 없고 환율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거나 조만간 정점을 기록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저가 매수할 기회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미국계 자금 유입도 꼽힌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까지 주식을 팔아온 유럽계 자금(국내 외국인투자 비중 30%)의 매도세는 둔화하고, 투자 펀드를 중심으로 미국계(41.2%)와 아시아계 투자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외국인 순매수 흐름은 지난 6월 이후 공매도 물량의 매도 포지션 청산을 위한 주식 재매입(숏커버링) 영향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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