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돈줄 조이기’에 국내 채권시장도 혼란스럽다. 과거 한-미금리 역전 때 ‘최후의 보루’로 외국인 이탈을 방어했던 채권시장조차 지난 3월부터 외인 자금 유입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다만 아직 다른 신흥국에 비해 외국인 이탈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국내 채권시장이 미국의 이번 긴축을 버텨낼지는 향후 환율과 국내 거시경제 상황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이 정책금리 인상을 시작한 올해 3월부터 국내 외국인 채권투자자금 유입이 크게 줄고 있다. 한은이 집계한 순유입 규모는 1월과 2월 약 30억달러씩이지만 3월 5억4천만달러, 4월 4억7천만달러로 큰 폭 감소했다. 금감원이 집계한 순투자 규모 또한 연초 3조원대에서 3월 2790억원, 4월 360억원으로 급격히 축소했다. 순유입과 순투자 모두 외국인 채권자금 매수에서 매도 및 만기상환을 뺀 금액으로, 집계 시점(실제 자금 국경 유출입 기준, 거래 체결 기준)에 따라 수치는 다소 다르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의 외국인 자금은 빠져나간다. 선진국보다 위험한 투자처인데, 금리 매력까지 떨어질 경우 투자금이 머물 이유가 없어서다. 그런데 과거 사례를 보면 채권은 주식보다 변동성이 적었다. 정부나 금융기관 등에서 채권을 발행하므로 안정적인 투자처라는 인식이 있으며, 기관 투자자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직전 한미 금리 역전(2018년 3월~2020년 2월) 기간 외국인 투자자금은 주식시장에서 총 53억7천만달러 순유출됐으나 채권시장은 오히려 총 219억2천만달러 순유입됐다. 채권시장을 마지막 보루라고 부르는 이유다.
최근 외국인 채권자금 유입 감소는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원인은 국내 경제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강한 긴축이라는 ‘세계 경제 여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채권시장 외국인 자금 이탈은 신흥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겨레>가 ‘신흥국 외국인자금 유출입’을 살펴 본 결과, 대부분 신흥국도 올해 3월을 기점으로 외국인 채권투자자금 유입이 크게 줄고 있다. 중국은 2월 38억달러 순유입에서 3월 -112억달러로 순유출 전환 뒤 4월에도 -21억달러를 기록했다. 인도는 1월 7억달러 순유입 기록 뒤 2월 -5억달러, 3월 -7억달러, 4월 -5억달러 등 각각 순유출을 나타냈다. 4월 타이(2억달러)와 터키(1억달러)는 소폭 순유입을 보였다.
한국은 4월 4억7천만달러 ‘순유입’으로 아직 ‘순유출’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방 국면’이 곧 ‘위험 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면 향후 환율과 국내 거시경제 여건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국인 채권시장 투자자들은 한-미 금리 차이뿐 아니라 환율, 경제 기초체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직전 한-미금리 역전 때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은 환 차익과 국가 신용등급, 외환보유액 등을 모두 살펴본 뒤 자금 이동 여부를 결정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미국이 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전 세계 채권시장이 모두 좋지 않으므로 ‘외국인 채권자금 감소’가 국내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다소 진정된 이후에도 우리나라만 외국인 자금이 이탈될 것인지 살펴봐야 하며, 시장금리·환율·경제 펀더멘탈 등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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