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산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산업은행 제공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임 의사를 밝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새 정부를 향해 “(산은을) 쓸데없이 평가하고 흔들지 말라”고 쓴소리하고, 윤 당선자가 공약한 산은의 부산 이전에 대해 “이렇게 무리해서 되겠냐”며 우려했다.
이동걸 회장은 2일 유튜브 생중계로 온라인 기자간담회 열어 1시간 동안 꼬박 재임 기간 성과를 강조하는 한편, 산은과 관련한 새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이 회장은 새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취지로 추진하는 산은 본사의 부산 이전에 대해 “1970~80년대 관치금융 당시 시각이 부산 이전의 근저에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 논의가)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심히 우려스럽다”며 “지역균형발전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나. 다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면 퍼주기가 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산은의 부산 이전으로 발생하는 부가가치 창출 주장에 대해서 “학자로서 볼 때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라며 “국가 경제 20조∼30조원이 마이너스 되는 것은 어떻게 할 거냐. 황당한 주장을 안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부·울·경 지역은 박정희 시절부터 특혜지역이었다”고 지적하고, “울산·포항·부산·창원·거제에 대한민국 알짜 산업이 다 있다”, “부·울·경 지역은 스스로 자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의 경제도시라고 한다면 자생해서 다른 지역을 도와줘야지, 빼앗아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부·울·경 지역이 스스로 “부실기업을 조정하고 새로운 것을 지원하고 키워야 스스로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다. 부·울·경이 싱크홀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또 “(새 정부와) 철학이 안 맞는 건 적절히 수정하라”며 “쓸데없이 평가하고 흔들기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부에서는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 ‘3개로 쪼개야 한다’ 등 산업은행을 전혀 모르면서 맹목적인 비방이 나타나는데, 도 넘는 무책임한 정치적 비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산은이 이룬 성과를 일일이 강조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넘겨받았을 당시 산은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설명했다. 그는 먼저 2016년 당시 회장직을 맡았을 때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부터 부실기업을 잔뜩 물려받고, 은행 금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며 “2015∼16년 당기순손실만 5조6000억원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구조조정이 거의 추진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이 회장은 “홍기택 전 회장 증언에 따르면 최경환 (전 부총리), 안종범 (전 수석)이 (산은과 관련해) 수조 원의 자금을 다 결정하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수조 원의 손실 생기는 것을 산은이 단독으로 결정했겠나. 산은의 죄는 (정부의 지침을) 거역하지 못한 죄”라고 했다.
한편, 이 회장은 재임 중 대우조선 합병, 케이디비(KDB)생명 매각, 쌍용자동차 매각이 무산된 데 대해서는 “꼭 이뤘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쌍용차 매각 무산에 대해서는 “쌍용차는 본질적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 지속가능한 사업성을 안 보이면 자금 지원으로는 회생이 어렵다. 대규모 부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지난 26일 금융 당국에 사임 의사를 밝힌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산업은행은 은행인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이라며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