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공기관장 인사권을 놓고 현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임원 교체를 앞둔 금융 공공 및 유관기관들이 속속 신규 임원 선임 일정을 늦추고 있다. 금융당국도 임원 교체를 앞둔 관련 기관에 새 정부 출범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금융위원회는 산하 공공기관이나 유관기관에 임원 선임 때 새 정부 출범 상황을 살펴서 결정하라는 뜻을 밝혔다. 금융위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새로 선임되는 분들은 새 정부에서 일할 분들이라 우리(금융위)는 정부 출범 상황을 감안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선거 전부터 갖고 있는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관들이 문의해 오면 이런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물론 판단은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가 공공기관 임원교체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것은 공공기관 임원 교체 시기가 정권 이양기와 맞물리자 일종의 ‘가이드’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공기관은 새 정부의 정책에 협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새 정부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 임명되도록 필요하면 선임 일정을 늦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과거에도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사례도 있었다.
예정된 일정에 따른 임원 선임을 하려던 기관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쪽으로부터 ‘알박기’라는 비판을 받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정을 연기하거나 절차 진행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오는 30일 주주총회에서 신임 감사를 선임하기 위해 지난달 공개모집을 하고 접수를 마쳤지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개최 등 후속 절차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예탁결제원 쪽은 “감사 선임 여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며 “다른 공공기관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가 “대통령 임기 내 인사권 행사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혀 현 정부와 인수위 사이에 ‘교통정리’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예탁결제원 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현 정권에서 내정한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려는 의혹이 있다”며 “임기 말 퇴행적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뉴딜펀드 등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한국성장금융도 지난 14일 이사회를 열어 새 대표 선임 안건을 의결하려다 보류했다.
한국은행도 유관기관인 금융결제원 원장 선출 절차를 진행하려다 알박기 논란이 일자 이주열 총재 퇴임 이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 4일 이주열 총재 명의로 금융결제원에 원장후보추천위원회 선임을 위한 사원총회를 열자고 요청했다. 정관에 따르면 2주 뒤인 18일에 총회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현재 원장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원장 선임 절차는 4월 이후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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