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수요가 증가한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3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전광판에 표시된 비트코인 시세 그래프. 연합뉴스
국내 주요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가 러시아에서 접속하는 인터넷주소(IP)를 차단하는 등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3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4대 거래소 모두 러시아에서 접속하는 인터넷주소를 차단하거나 출금을 중단하는 조처를 했다. 업비트는 이날 “러시아 아이피에서 가상자산 출금 요청이 발생할 경우 출금을 제한하는 조처를 취했다”고 밝혔다. 빗썸과 코인원도 이날 오후 러시아에서 접속하는 아이피를 차단했다. 코빗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 아이피 접속을 차단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 거래소인 고팍스는 업계 1·2위인 업비트·빗썸보다 먼저 제재에 나섰다. 고팍스는 지난 2일 누리집에 “러시아 아이피(IP·인터넷규약주소) 접속을 차단하고 러시아 국적 고객(약 20여명)의 모든 계정을 동결했다”며 “추가 제한조처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도 러시아에 가상자산 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금융제재 회피 수단으로 가상자산을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대응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독일의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유럽 재무장관 회의 뒤 “우리는 제재 대상인 개인과 기업들이 (현금 등 보유 자산을) 규제 대상이 아닌 가상자산으로 전환하는 걸 막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독일은 주요 7개국 차원에서 이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이 국제금융결제망(스위프트)에서 러시아 주요 은행을 퇴출하기로 결정하자 러시아 사람들이 대체 결제수단이나 자산 확보 목적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구매에 나서면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국제사회의 논의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제재에 나서고 있지만 세계 주요 거래소들은 참여를 꺼리고 있다. 세계 1·2위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최근 러시아인 계정을 차단해달라는 우크라이나 정부 요청을 거절했다.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 재벌 등 일부 개인의 계좌는 차단하지만 러시아 이용자 전체를 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거래소들은 외국인 거래가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라 제재를 해도 거래소가 입을 타격이 별로 없다.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낸스 등은 다양한 국적의 사용자들이 거래를 하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일괄 차단할 경우 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제재를 꺼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계 주요 거래소들이 제재에 동참하더라다도 가상자산 특성 상 거래소를 통하지 않는 개인간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규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핀테크학회장인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제금융결제망은 세계 거의 모든 은행이 사용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제재의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가상자산도 규제를 하려면 국제금융결제망과 비슷한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수용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는 “현재 세계 정부 차원에서 가상자산을 규제하는 통로는 현금화할 때 은행을 통제하는 방식뿐이며 가상자산이 러시아로 가는 것 자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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