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전월보다 줄었다. 일부 막혔던 은행 대출이 새해 들어 재개돼 대출 수요가 몰릴 거란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부동산 시장도 점차 안정 국면으로 접어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3일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은행의 여수신 자료를 보면, 1월28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7조689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3634억원(0.2%) 감소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신용대출이 크게 줄었다. 한 달새 잔액이 2조5151억원(1.8%)나 감소했다. 설을 앞두고 받은 성과급을 마이너스통장에 넣어두면서 대출잔액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설 연휴가 2월 중순 무렵이었던 지난해 2월에도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이 감소한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받아놓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만큼은 언제든 쓸 수 있어 신용대출 잔액은 추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대출규제 강화로 신규 대출이 크게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증거금이 100조원 남짓 몰리는 등 시중 자금을 빨아들인 엘지(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은 월말 기준 대출 잔액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청약을 위해 신용대출 잔액이 크게 늘었으나 청약 후 잔여 증거금이 1월28일 전에 모두 반환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에는 에스케이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상장 당시 증거금 반환 일정이 5월로 넘어가는 바람에 4월 신용대출이 급증했다가 5월에 크게 감소한 바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증권업계와의 간담회에서 가계대출 통계가 왜곡될 수 있다며 월말에 상장이 몰리지 않도록 일정 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506조8181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4135억원(0.3%) 늘었다. 주택매매 위축 영향으로 증가율은 전월(0.4%)보다 다소 둔화했다. 전세 비수기인 지난달 전세자금대출(129조5152억원)은 전월보다 1817억원(0.1%) 감소했다. 다만 오는 7월부터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크게 올릴 수 있어 전세대출 수요도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금리인상 추세로 예금 금리가 오르는데 투자심리도 위축되면서 시중자금이 은행 예·적금으로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총수신은 1788조5520억원으로 전월보다 34조1929억원(1.9%) 늘었다. 수시로 입출금을 할 수 있고 이자가 거의 없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요구불예금은 지난달 684조6822억원으로 전월보다 10조5628억원(1.5%) 줄었다. 반면 은행들이 수신상품 특판 마케팅을 펼치면서 연 1~2%대 금리가 형성된 예·적금 등 저축성예금은 지난해 말 690조366억원에서 지난달 말 701조3261억원으로 11조2895억원(1.6%) 늘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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