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기조에 따라 ‘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은행들이 한시적으로 중단했던 대출 상품 판매를 재개하거나 높였던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다. 정부 방침에 호응해 대출 수요를 억제한 결과 가계대출 증가율 상승세가 어느 정도 잡혔다고 판단하고 다시 고객 모으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23일 케이비(KB)국민은행은 전날부터 주택금융공사와 서울보증보험이 담보하는 전세자금대출에서 소비자가 ‘일시 상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에 동참하며 실수요자 중심의 각종 대출 규제 방침을 선제적으로 적용한 바 있다.
예컨대 지난달 25일부터 국민은행은 해당 전세자금대출에 대해 ‘분할 상환’이나, 원금 일부는 분할로 갚고 나머지는 일시에 갚도록 하는 ‘혼합 상환’ 방식만을 허용했다. 일시 상환이 일반적인 전세자금대출에 대해서도 분할 상환 의무를 두는 방식으로 수요를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대출 증가율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각종 조치에 따라 실제 가계대출 증가세도 주춤하자 한 달여 만에 대출 문턱을 조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신규(대출)는 덜 늘고 기존 대출은 상환되고 있어 수치에 여유가 생겼다. 숨통이 좀 트인 듯하다”고 했다.
이와함께 국민은행은 같은 날부터 집단대출 가운데 잔금대출의 담보의 가치를 따지는 기준으로 케이비 시세와 감정가액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지난 9월 국민은행은 잔금대출 담보 기준을 △케이비 시세 △감정가액 △분양가격 가운데 가장 낮은 금액으로 하기로 한 바 있다. 분양가가 시세나 감정가에 비해 낮아 소비자의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세가 기준이 되면 대출 한도가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중단했던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한 달여 만에 다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들은 23일 오후 6시부터 신용대출을 비롯해 비대면 대출인 하나원큐 신용대출, 하나원큐 아파트론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주택, 상가, 오피스텔, 토지 등 부동산 구매 자금 대출 상품도 다시 판매할 계획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에 동참하면서 전년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이 4%대로 안정화되자 대출 숨통을 틔운 것으로 풀이된다.
엔에이치(NH)농협은행도 다음달부터 무주택자 대상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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