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발맞춰 일부 은행이 전세대출 원금의 일부를 매달 갚도록 하는 ‘부분 분할 상환’ 방식을 특정 상품에 한해 의무 적용했다. 이러한 조처가 은행 전체로 퍼질 가능성에 눈길이 쏠리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실수요자 부담”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당국의 추가 조처를 살피며 일부 분할 상환 의무화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케이비(KB)국민은행은 전세대출 원금의 5∼10% 이상을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혼합 상환 방식을 지난달 25일부터 도입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의 질적 건전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은행들에 전세대출 분할 상환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데 따른 조처다. 국민은행은 주택금융공사, 에스지아이(SGI)서울보증의 보증을 담보로 한 신규 전세대출 가입자를 상대로 각각 원금의 5%, 10∼30%를 분할상환하도록 하는 방안을 현장에 의무 적용 중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따른 한시적 조처”라며 “여러 전세자금 대출 가운데 두 기관을 통한 신규 대출에 한해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대체로 전세대출을 받은 뒤 2년 만기가 끝난 시점에 원금을 한 번에 갚는 ‘만기 일시 상환’을 택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국민은행에서 주택금융공사나 에스지아이서울보증의 보증서를 담보로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이자는 물론 원금의 일부도 매달 갚아 나가야 한다. 예컨대 주택금융공사 보증을 담보로 2억원을 전세 대출받은 이의 경우 최소한 원금 2억원의 5%인 1000만원을 이자와 함께 매달 나눠 갚아야 한다. 남은 원금 1억9000만원은 2년 뒤 만기 때 갚는다. 에스지아이서울보증을 통했을 경우 최소한 원금의 10%인 2000만원 이상을 2년 동안 이자와 함께 매달 갚아 나가야 한다. 소비자들은 분할상환금액을 10%, 20%, 30%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한 소비자가 연 3.5% 금리로 주택금융공사 보증을 담보로 전세대출을 받았다면 만기 일시 상환 방식의 경우 매달 58만3000원의 이자만 2년 동안 내다가 만기 뒤 원금을 한 번에 갚으면 된다. 하지만 원금 5%를 일부 분할 상환하면 41만7000원의 원금도 함께 갚아야 해 월 상환액이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국민은행이 시행한 원금 일부 분할 상환 의무화 조처에 동참할 지 여부에 대해 다른 은행들은 현재로선 유보적이다. “주택금융공사 상품이 대부분 소득제한이 있는데 소비자의 상환 여력이 안 된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는 등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담보로 한 원금 5∼95% 이내 부분 분할 상환 방식의 전세자금대출 상품이 6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기업)에서 공동 출시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판매율이 높지 않다는 게 은행 쪽의 공통된 설명이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여전히 주택금융공사의 부분 분할 상환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의무화하진 않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실무 부서에서 단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소비자의 선택을 강요하는 부분이라 조심스러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쪽도 “당장 계획 중인 것은 없다. 당국에서 인센티브 등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내야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부분 분할 상환) 상품이 있지만 판매율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다만 앞서 국민은행이 선제 도입한 △전셋값 증액분에 한해 대출 △전세금 잔금 지급 이전까지만 대출 △1주택자는 창구 심사 뒤 대출 등 전세대출 관련 규제 강화 조처가 이후 금융당국과의 협의에 따라 전체 은행에 적용된 바 있다. 향후 정부가 내놓는 구체적 ‘인센티브’ 내용에 따라 분할 상환 역시 전 은행으로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정책 모기지 배정 우대 등 방식으로 은행에 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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