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상장사들이 집중투표제 등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지배구조 개선을 여전히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한국거래소가 의무공시 대상인 코스피시장 상장사 175곳(비금융)이 낸 2021년 지배구조보고서를 점검한 결과를 보면, 이사회 부문에서 경영권과 직접 관련된 항목의 준수율이 낮았다. 집중투표제 채택은 5.1%에 그쳐 지난해(5.8%)보다 뒷걸음질쳤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다수의 이사를 뽑을 때 주주에게 1주당 1표가 아니라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소액주주들이 선호하는 후보에 표를 몰아주면 선출 가능성이 커져 기업들이 도입을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상장사(30.3%)는 열 중 셋 꼴로 전년보다 개선되지 않았다.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마련한 곳은 28%에 그쳤다. 내부통제정책 마련 준수율(88%)은 전년(94.7%)보다 되레 감소했다.
반면 여성이사 선임 비율은 44.6%로 전년(24.6%)보다 상승했다. 지난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에 대해 여성 등기임원 선임을 의무화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의 여성 참여 강화는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적격임원 선임방지정책 수립(71.4%), 6년 이상 장기재직 사외이사 미보유(92.6%)도 전년보다 늘어났다.
주주권리 부문에서는 배당정책 수립 준수율이 46.3%로 17.6%포인트 증가했다. 그만큼 배당 예측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주총 4주전 소집 공고’를 지킨 곳은 28.6%로 지난해(17%)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전자투표 실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42.7%에서 72%로 큰폭 높아졌다. 반면 서면투표는 11.7%에서 8.6%로 낮아졌다.
감사 부문을 보면, 감사위원 보수정책을 보유한 곳은 9.1%에 그쳤다. 내부감사기구 전담 지원조직 설치(53.7%)는 제자리 걸음했다. 반면 법적인 규제를 받는 감사위원회 전원 사외이사 구성(84%)의 준수율은 높았다.
거래소 자료에는 주요 대기업집단이나 기업별 준수 현황이 나오지 않는다. 앞서 엔에이치(NH)투자증권이 기업들이 공시한 지배구조보고서 22개 항목에서 핵심지표 15개를 뽑아 조사한 결과를 보면, 4대그룹 중에서는 엘지(LG)의 준수율이 79%로 가장 높았고 현대차그룹은 68.9%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개별 기업별로는 에스케이(SK)텔레콤의 준수율이 100%로 1위였고. 가장 낮은 기업은 아시아나항공, 금호석유, 하이트진로홀딩스로 준수율이 33.3%에 그쳤다.
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 22개 항목의 준수율 평균이 57.8%로 지난해(49.6%)보다 높아졌다. 기재 충실도 등 보고서의 질적 향상과 공시 의무화가 지배구조개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확인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준수율은 기업이 공시한 내용만을 토대로 산출한 수치로, 실질은 따지지 않아 지배구조의 질적 수준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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