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플랫폼 머지포인트 대규모 환불 사태로 손실보상 대비를 해놓은 유통대기업을 제외한 다수 제휴 개인사업자의 상당한 손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머지포인트’ 본사 앞에 대면 환불 절차 중지 및 온라인 환불 절차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할인결제서비스 머지포인트의 환불 지연 사태를 계기로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쓰이는 선불충전금의 부실한 관리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 금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금융당국의 감시 체계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지포인트 사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게 금융당국의 시장 감시 능력 부족이다. 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에서 규정한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자’(선불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3년여 동안 영업을 해오며 규모를 키웠다. 미등록 영업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일각에서는 머지포인트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윤민섭 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금융감독원이 그동안 큰 현안에만 집중하고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비자들의 피해에는 비교적 관심이 없었다”며 “결국 시장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사태가 커진 뒤인 지난 16일에서야 정은보 원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선불업 실태 파악에 나섰다.
만약 머지포인트가 선불업자로 등록했다면 문제가 없었을까. 그렇지도 않다. 고객이 맡긴 선불충전금은 일종의 ‘예금’ 성격이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전금법에는 선불충전금을 외부기관에 별도로 보관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이 없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2006년에 제정된 전금법은 별다른 개정 없이 유지된 터라 최근 급속히 늘어난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에서 소비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도 지난해 고객의 선불충전금 보호 조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가 올해 초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 전에 선불충전금 신탁·보증보험에 가입했다.
선불충전금 예치잔액은 2015년 9천억원이었다가 올해 3월 기준으로 2조4천억원까지 불어났다. 2조원 넘는 소비자 돈이 보호장치 없이 핀테크 업체들의 금고에 불안한 상태로 보관돼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유명 핀테크 회사 와이어카드가 2조원대 분식회계가 적발되면서 파산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해 핀테크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먹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머지포인트 사태는 (더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예행연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전자금융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선불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에 예치하거나 신탁·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 내용 가운데 핀테크 업체에 별도 계좌 개설 권한을 주는 방안이 은행의 반발을 샀고, 금융결제원을 감독·제재하는 권한을 금융위원회에 부여하는 것을 두고 한국은행이 강하게 반대해 국회 논의는 공전되고 있다. 선불충전금 이용자 보호 규정은 관련 기관 사이 쟁점이 없는데도 다른 이슈 때문에 법안 심의가 지연되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최근에는 선불금 자동충전 등 사실상 계좌 성격을 지니는 서비스도 나온다”며 “개정안 가운데 선불충전금 외부 예치 의무화 등 이용자 보호 규정을 중심으로 먼저 개정하는 식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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