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정권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원 전원에 대해 일괄사표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 원장이 취임사에서 ‘금융감독기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재정립하겠다’며 윤석헌 전임 원장의 그림자 지우기를 노골적으로 천명한 데 이어, 윤 전 원장 시기 원칙적인 감독·검사를 주도했던 임원들을 ‘찍어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정 원장은 지난 10일 금감원 임원 14명(부원장 4명, 부원장보 10명)에게 일괄사표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임원들은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중립성 차원에서 임기 3년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들은 과거에 원장이 바뀌면 임원들이 일괄사표를 내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정권 말기로 임기가 9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감독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 원장이 지난 6일 취임사에서 “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절차적 측면에서도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에 기초한 금융감독이 되어야”하고,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고 밝힌 게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윤 전 원장이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를 초래한 금융회사 경영진을 강도높게 제재한 데 대해 금융권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윤 전 원장 시기 취해온 감독정책 기조에서 ‘유턴’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금감원 전 임원은 “윤 전 원장이 금융회사 경영진들을 강도높게 제재를 해 미움을 샀지만 그렇게라도 했으니까 금융회사들이 사모펀드 피해자들에게 그나마 피해보상에 나섰던 것”이라며 “정 원장이 전임 원장의 색깔 걷어내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일괄사표 방식이 지금같은 정권 말기에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개 일괄사표는 정권이 바뀌고 나서 과거 정권과 다른 철학을 가진 인물이 기관장으로 오면 인사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모피아(금융관료) 출신인 정 원장이 그동안 금융위원회는 물론 금융회사 경영진이 껄끄러워 했던 일부 임원들을 이번 기회에 해임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부 임원의 경우 금융회사 제재와 금융소비자 보호, 피해보상 등과 관련해서 알력이 적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정 원장이 키코·사모펀드 사태에서 소비자 피해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려고 노력했던 윤 전 원장의 그림자를 지우고, 취임사에서 규제가 아닌 지원을 강조하면서 정권 말기에 임원 일괄사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이 정부가 추진했던 약간의 금융개혁마저도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일괄사표 방식에 대해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공무원은 이런 방식을 쓸 수도 있으나 금융회사와 정권으로부터도 자율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기구의 경우엔 맞지 않는 방식으로 지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전 임원은 “과거에 낙하산으로 산하기관에 내려가는 게 관행처럼 돼 있었을 때는 2년 정도 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는데 현 정부가 구태를 재연하다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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