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에 나선 가운데 농협의 가계대출이 올해 상반기에 급증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수도권 지역농협의 한 지점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금융당국이 지난해 9월께부터 가계대출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농협의 가계대출이 올해 상반기에만 8조원 이상 급증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의 대출총량 관리로 은행들이 움츠러든 틈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농협이 공격적인 대출영업을 통해 외형 확장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말을 종합하면, 농협의 가계대출은 올해 상반기에 무려 8조1600억원 증가했다. 농협 가계대출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3900억원 감소했으나, 지난해 하반기에 4조원가량 증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 그 두배가 늘어난 것이다.
농협의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금융권 전체 증가분(63조3천억원)의 13%나 차지하는 규모다. 또 상호금융·보험·저축은행·여전사 등 제2금융권 전체 증가분(21조7천억원)의 38%나 차지한다.
이는 그동안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던 은행권의 움직임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분은 지난해 상반기 40조7천억원에서 하반기 60조원으로 급증했다가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올해 상반기에는 41조원대로 둔화했다.
농협의 이런 대출 증가에 대해 금융당국에선 매우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국으로선 지난해 10% 가까이 급증한 가계대출 증가율을 올해 5~6%대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는데, 제2금융권, 그중에서도 농협에서 구멍이 생기고 있는 탓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전에는 은행 대출이 줄면 전체 대출 규모가 줄었는데 지금은 은행이 조금 줄어도 비은행 쪽에서 늘어버리니까 별로 안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실효성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당국이 주목하는 부분은 농협의 가계대출 중에서 주택과 상가 등 부동산 관련 담보대출이 증가한 점이다. 올해 상반기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비주택담보대출(비주담대) 증가분이 각각 4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주담대에선 개별 주담대뿐 아니라 집단대출도 많이 늘었다. 비주담대 중에서는 토지보다는 상가와 오피스텔 등을 담보로 한 대출이 많이 늘었다. 농협의 상호금융사업은 농촌지역의 농업 관련 금융 서비스와 조합원 편익 제공 등의 활동을 주로 하도록 돼 있는데, 사실상 은행과 비슷한 대출 행태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쪽의 대출 증가가 많아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에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에선 농협이 규제 차익을 이용해 고객 영업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차주 단위 총부채상환비율(DSR)은 은행이 40%인데 비해 상호금융은 60%다. 고객 입장에서도 은행보다 상호금융에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조금 낮춰 주면 고객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농협의 주담대 대출금리는 2~3%대로 은행과 별 차이가 없다. 금융당국의 또다른 관계자는 “농협이 금리를 싸게 제시하면서 고객을 늘리는 것 같다”며 “자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상반기 가계대출 동향이 발표된 다음달인 15일 ‘제1차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TF’를 소집해 상당히 강도높은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도 부위원장은 “금융권 일각에서 은행·비은행간 규제차익을 이용하여 외형 확장을 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면서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 규제 차익을 해소하거나 벌칙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농협은 “우리가 특별히 영업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다 보니까 고객들이 농협에 많이 온 것 같다”며 “가계대출 관리계획을 수립해서 주 단위로 지역별 증가율을 점검하는 등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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