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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관계금융 실현하는 지역밀착 공공은행 만들자”

등록 2021-06-17 09:25수정 2021-06-17 15:18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신용정보 낮은 청년, 매출실적 낮은 성장 잠재력 있는 기업은
기존 금융에서 금융 서비스 이용 어려워 도약 어려운 악순환

지역에 뿌리내리고 정성적 정보 종합판단하는 관계금융 절실
지역밀착 공공은행은 지역경제 살릴 수 있는 열쇠가 될 것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급하게 돈을 융통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자. 은행 대출창구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당신의 신용점수를 알아보는 것이다. 만일 신용점수가 800점 아래면 은행에서 담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은행은 평균 800점 이상, 신용등급 기준으로 3등급 이상의 고객과 거래하길 원한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도 신용등급이 있어서, 등급이 낮은 회사가 돈을 빌리려면 등급이 높은 회사보다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소매금융은 등급제로 운영된다. 마치 도축한 짐승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처과 같다. 누군가 우리들에게 꼬리표를 달아놓고 있다. 누가 이런 기준과 질서를 만들었을까? 은행과 신용평가사를 포함한 민간 금융회사들이다.

그렇다면 저신용자는 어디로 가야할까. 금융공급 사다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신용등급 4∼6등급은 저축은행(2금융권), 7∼10등급은 대부업체(3금융권)로 가야 한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없이, 아래로 떨어질수록 이자율도 올라간다. 현재 350만명이 넘는 저신용자들이 이 거미줄(web of debt)에 걸려 고통받고, 우리는 이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금융회사가 재무상태나 신용점수를 기준으로 금융혜택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거래형 금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신용점수가 낮거나 담보가 부족한 사람이나 회사는 금융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걸까?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두번 카드대출을 사용하는 바람에 신용점수가 나쁜 청년, 매출실적은 낮지만 미래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지원할 방법은 없는 걸까?

금융회사가 개인 또는 기업의 정량적·외형적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비계량적·정성적 가능성을 토대로 금융거래를 하는 방식을 ‘관계형 금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거래방식이 이루어지려면 금융기관이 거래를 해도 되겠다는 판단, 다시말해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은행이 대출심사를 할 때 재무제표만 들여다보지 말고 정성적인 정보를 수집하면 된다. 기업체에 직접 방문해 공장도 살펴보고 직원들과 이야기도 나누면 된다. 거래처에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볼 수도 있다.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그렇다면 은행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거래금융과 관계금융 비교
거래금융과 관계금융 비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관계형 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금융회사를 만들면 된다. 지역주민들의 살림살이 사정을 두루 알고, 축적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 기법을 적용하는 ‘지역밀착형 금융기구’가 그것이다. 민간 금융회사보다는 공공이 사업을 주도하거나, 공공성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

세계적으로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주민과 지역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크고 작은 회사와 기관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국내 사정은 어떤가? 현재 우리나라에 이런 기법을 활용하는 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서민금융기관이라 할 수 있는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도 좁은 공간(공동유대)에서 일하지만 관계금융을 실천하진 않는다.

지역밀착 공공은행이 생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토종 강소기업들에게 자금을 제공해줄 수 있다. 공익적 가치는 높지만 수익성은 높지 않은, 그래서 민간은행이 돈 빌려주기를 주저하는 사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수익창출보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은 영역에 인내자본을 공급함으로써 지방대를 졸업한 청년들을 고용할 수 있다.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재건은행(KfW)처럼 중앙과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출자·출연한 지역 공공은행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지역 기반의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작업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나 혁신도시 개발, 외부기업 유치사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문진수 서울신용보증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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