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월세, 휴대전화료, 휘발유, 공동주택관리비, 전기료, 외래진료비, 중학생학원비, 도시가스, 고등학생학원비….
소비자물가지수를 측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가계 지출의 상위 10개 품목이다. 통계청은 총 460개 소비자물가 ‘대표품목’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가격조사를 진행하면서 매달 물가 변동을 가늠한다. 올해는 5년에 한 번씩 대표품목을 개편하고 가중치를 조정하는 ‘소비자물가 개편의 해’다. 최근 통계청에서는 지난 5년간(2016∼2020년) 변화한 한국인의 소비 생활을 반영하기 위해, 전문가·관련 기관 등 의견 수렴 작업이 한창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시민들의 생활 물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자 정부가 정책 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근거다. 금리, 최저생계비, 최저임금, 국민연금 지급액 등을 정할 때 소비자물가지수가 쓰인다. 가구의 소비 구조와 물가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정책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측정의 대상이 바로 ‘대표품목’이다. 가계동향조사를 통해서, 전체 가계의 평균 소비 지출 비중이 ‘1만분의 1’을 넘는 상품군을 추린 뒤 이 중에서 대표품목을 선정한다. 추세적으로 소비가 줄어들면 품목에서 빠지고, 소비가 늘어나면 들어가는 식이다. 지난 2015년 기준 개편 당시에는 한때 학생들 필수품이었던 ‘사전’이 빠지고, 운동 열풍을 반영한 ‘헬스기구’가 새로 들어갔다.
460개 대표품목의 ‘가중치’를 보면 한국인이 무엇에 돈을 많이 쓰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볼링장 이용료와 쌀값이 똑같이 10% 오르더라도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기 때문에 각 대표품목에는 가중치가 매겨진다. 2017년 기준 대표품목 가중치를 살펴보면, 해장국은 4.6/1000으로 전체 460개 품목 중 51위를 차지하고 있다. 쌀은 4.3/1000으로 54위다. 평균적인 가계에서는 쌀보다 술 먹은 다음 날 해장하는 데에 돈을 더 많이 썼다는 뜻이다. 가중치는 2∼3년에 한 번씩 조정된다.
이번 소비자물가 개편의 관건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패턴 변화가 얼마나 반영되느냐다. 통계청은 코로나19로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체온계 등을 대표품목에 넣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검토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특정 품목의 소비가 늘었다고 해서 모두 대표품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기곤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대표품목이나 가중치를 너무 자주 많이 바꾸면, 물가 변동이 나타나도 가격 추세의 변화인지 품목·가중치 변경에 따른 효과인지 알기 어렵다”며 “시기적 특성상 급작스러운 변화로 품목 조정의 필요성이 생기더라도 바로바로 반영하는 것은 소비자물가지수의 원취지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근관 통계청장도 <한겨레>와 통화에서 “일시적으로 소비가 늘어난 품목과 추세적으로 계속 늘어나는 품목 등을 고려해서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세’를 고려하더라도 마스크는 대표품목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계청 관계자는 “마스크는 이미 2019년 기준으로 예상 추가품목에도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미세먼지 등을 이유로 마스크 소비지출액은 꾸준히 늘어왔다”며 “동종 품목군의 가격 대표성이 있는지, 지속적 조사가 가능한지 등을 따져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지수 개편 결과는 오는 12월 중순께 발표될 예정이다.
이지혜 이정훈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