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분석 전문 기관인 시이오(CEO)스코어 대표를 지낸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에게 인생과 사업의 주제어는 ‘마부성침’(磨斧成針)이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 듯’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를 다듬어 바늘처럼 날카롭고 객관적인 정보를 산출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시이오스코어 대표 시절 사무실에 걸어뒀던 ‘마부성침’ 액자는 서울 송파구 리더스인덱스 작업실로 옮겨 놓았다.
엘지(LG)전자에서 전략 기획 업무를 맡기도 했던 박주근 대표는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시이오스코어에선 재벌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재무제표, 지배구조 데이터를 많이 다뤘는데, 이젠 기업 임원 중심으로 사람 관련 데이터를 전문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12년 시이오스코어 설립 때 2대 주주로 참여해 대표를 맡아오다 올해 4월 리더스인덱스를 차려 독립했다. 기업 임원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엘리트 카르텔’ 정보를 구축해 전문화할 계획이다. 지배주주 일가를 중심으로 한 임원들의 혼맥·학맥은 기본으로 포함된다. 올 9~10월부터 분석 결과를 낼 것이라고 박 대표는 밝혔다.
시이오스코어가 ‘기업’의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면 리더스인덱스는 기업의 ‘사람’에 주목한다. ‘돈의 흐름’을 보다가 이젠 ‘사람의 흐름’을 통해 기업들을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수소자동차를 예로 보자. 관련 회사에 수소차 전문 임원이 몇 명이나 포진해있는지, 얼마나 오래 근무한 이들인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누가 누구와 연관돼 있는지가 투자자 등에겐 중요한 지표이며 선행성을 띤다. 재무제표는 후행성이 강하다.”
서울 송파구 리더스인덱스 사무실에 걸려 있는 ‘마부성침’ 액자.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리더스인덱스 제공
한국 사회에서 기업 정보를 다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재벌 문제로 연결된다.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표는 “재벌을 중심으로 한 우리 기업들의 행태를 투명하게 드러내 투자의 참고 자료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시이오스코어나 리더스인덱스에 앞서 재벌 중심의 기업 세계를 분석해 실상과 문제점을 알리려 한 시도는 2006년 4월 설립된 재벌닷컴(대표 정선섭)에서 시작됐다. 재벌닷컴은 ‘대한민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 경영의 실상을 진단하고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 경영환경을 만든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다.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제출된 공시 자료와 자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벌가의 주식, 부동산 등 재산 내역과 변동 상황을 파악해 알리는 일을 해왔다.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가 2009년에 생겨나 그 뒤를 이어 기업 분석에 나섰다. 언론사 기자 출신의 오일선 소장은 “꼭 재벌 문제에 한정하지는 않고 데이터로 기업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엑스오연구소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 3만5천개 중 5천개가량을 추려 분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견·중소기업, 비상장사도 다수 포함돼 있다.
오 소장은 “정보를 공개해야 기업의 행태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시엑스오연구소는 분석 결과를 언론에 알려 기업의 실상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기업 컨설팅을 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사안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달 들어 조세회피 지역에 있는 재벌 그룹의 해외 계열사 현황을 분석해 공개한 일이 한 예다. 주요 7개국(G7)이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정하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에 맞춰 진행한 조사였다.
박주근 대표는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작은 지분으로 많은 것을 움직이는 것”을 꼽는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원칙이 깨지고 소액주주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감 몰아주기’ 같은 반칙과 변칙도 여기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는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상위 50대 주식 부자를 조사해보면 한국에선 70~80%가 세습 부호다. 미국이나 일본은 거꾸로 60~70%가 창업 부호다.” 박 대표는 “요즘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한국에선 지(G), 즉 지배구조 투명화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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