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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투기꾼 뒤 ‘쩐주’는 따로 있죠”…농협의 수상한 그림자

등록 2021-05-14 14:54수정 2021-05-15 02:34

[르포ㅣ광명 새도시 후보지 시흥]
1.3km 거리 북시흥농협-부천축산농협 사이
공사 중 도로 옆에 부동산중개소 13곳 난립
신도시 후보지 ‘중개소-지역농협 유착’ 의혹
지역농협 관계자 “한 부동산이 여러 건 연결”
공무원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법행위 조사
경기 시흥시 과림동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들머리의 한 건물 담에 11일 오후 부동산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시흥/이정아 기자
경기 시흥시 과림동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들머리의 한 건물 담에 11일 오후 부동산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시흥/이정아 기자

13일 광명 3기 새도시 부지의 한복판에 위치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도착해 농협이 어디에 있는지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었다. “여기 농협이 2개인데 어느 농협이요?” 북시흥농협이라고 하자 주민은 북쪽을 가리키며 1㎞쯤 가면 과림지점이 있다고 알려줬다. 또하나의 농협(부천축산농협)은 반대방향으로 300m쯤 가면 된다고 했다. 북시흥농협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에게 농지 담보대출을 내준 곳이고, 부천축산농협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농지매입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있는 공무원들에게 농지매입자금을 대출해준 곳이다. 또한 농협 일부 직원들은 가족 명의로 대출을 받아 새도시 부지 인근의 농지나 상가 등에 투자금융당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약 1.3㎞ 떨어진 두 지역농협 지점 사이에만 도로를 따라 13개의 부동산중개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도로는 공사중이라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희뿌옇게 날렸고, 주변은 온통 철재더미와 고물 등이 야적돼 있었다. 인도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 주민은 “공사가 4년째 진행중”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0년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됐다가 4년 뒤 해제된 뒤 다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는데 시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중심 주택정책이 주변 수도권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북시흥농협 과림지점은 도로에서 5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초입에 있는 건물 담벼락엔 부동산중개소 광고 10여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땅·공장·창고, ○○부동산’, ‘땅·공장·창고·야적장·하우스, ○○○부동산’….

지나가는 주민 몇명에게 농협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이대는 60~70대였고, 모두들 조합원이라고 했다. 대부분 “조합원에게 혜택을 많이 준다”거나 “조합 임원이 ○○교회 장로님으로 좋은 분들”이라며 듣기 좋은 말들만 했다. 엘에이치 직원들에게 대출을 해준 것은 “금융회사가 수수료 받고 대출해준 게 뭐가 잘못이냐”는 반응도 있었다. 어렵사리 한 주민으로부터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곳 토박이로 왜곡된 개발정책의 산증인이라고 했다.

“여기 부동산중개소들이 이렇게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거래 하나 성사시키면 몇십억 하니 한건만 해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이 수수료로 떨어집니다. 거기다가 임대도 하고. 그런데 전주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사가 되죠.” 중개소 뒤에는 농지 구입에 돈을 대주는 전주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전주가 누구냐는 물음에 그는 “여기 농협, 축협이 전주죠. 고객은 중개소에서 끌어오고 돈은 조합에서 대주는 식이죠”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농사를 많이 안 지어 조합이 조합원을 주고객으로 하는 경제사업보다는 주로 토지거래에 대출을 해주는 금융사업으로 매출을 올린다며 다른 주민들도 이런 사정을 알지만 얘기를 안 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중개소들은 주로 외지인들 상대로 영업을 하고, 토박이 농민들과는 거의 왕래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엘에이치 직원들의 광명 3기 새도시 농지 투기는 이곳 부동산중개소 한곳이 농협과 ‘중간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 지역농협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 부동산이 여러 건 (중개)한 거 같더라. 나도 나중에 알았다”며 “부동산에서 서로 연결돼서 한 거 같더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이곳 지역농협과 부동산중개소 등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는 금융·수사당국도 이런 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해 수사당국 관계자는 “현재 수사중”이라고 말했다.

이곳 부동산중개소와 지역농협의 활동무대는 단지 3기 새도시 부지 내부만이 아니었다. 광명·시흥·부천 일대는 물론 화성 등까지 활동 범위에 들어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 부동산들이 서로 모르는 투자자들까지도 연결시켜서 공동투자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한 부천지역 부동산에는 여러 명이 공유지분 방식으로 투자를 했는데, 이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지 부동산이 기획부동산처럼 대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필지를 떼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연결시켜 공동 구입도 추진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10년 이상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사장은 “땅값이 말도 못하게 솟아서 적은 돈으로 투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유지분 방식은 여러 사람이 함께 투자하는 방식인 터라 부동산에서도 제일 위험한 거래”라며 자신은 그런 거래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강남 아파트 하나 팔면 현금이 20억, 30억씩 생긴다. 투기꾼들이 그거 가지고 와서 땅, 공장을 사버린다. 반반한 건 다 팔렸다. 20억 이상씩 투자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부동산 투기 특별 금융대응반’은 지난 9일 부천축산농협에 대한 검사 결과 공무원 8명과 그 가족 3명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불법 투기를 한 혐의를 파악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응반은 “신도시 농지매입자금 대출 시기 등을 고려 시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법행위 의심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 공무원은 주로 경기지역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광명 3기 새도시 인근 농지 등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흥·광명/박현 기자, 이재호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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