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104개 단체)과 금속노조가 지난 5월4일 포스코 본사 앞에서 미얀마 군부 관련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삼성전자·현대차·엘지(LG)전자·에스케이(SK) 등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고 ‘한국형 이에스지’(K-ESG) 지표 초안을 공개했다. 세계적으로 이에스지(ESG: 환경 Environment, 사회책임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의 알파벳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가 기업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600개 이상의 평가지표가 난립하자 정부가 표준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비재무적 요소인 이에스지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공신력 있는 지표가 없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산하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를 통해 지난해 4월 한국전략경영학회에 용역을 줘 케이-이에스지 평가지표 개발에 착수했다. 산업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용역 결과를 설명하면서 “국외 이에스지 지표는 우리나라의 경영환경 및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국내기업에 역차별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케이-이에스지는 우리 업계의 이에스지 평가 대응능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부의 포부(?)와 달리 정부 차원의 이에스지 표준화 작업은 시작부터 체면을 구겼다. 케이-이에스지 지표를 국내 200개 기업에 적용해 평가한 결과 포스코가 최상위 단계인 A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연간 8천만톤의 온실가스 배출로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탄소배출 기업’이기 때문에 환경을 중시하는 이에스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쏟아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도자료를 내어 포스코를 A등급으로 평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노 의원은 “정부의 엉터리 평가지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포스코는 산재 1위 기업인데…”
노 의원은 포스코가 환경(E)뿐 아니라 사회책임(S)과 지배구조(G) 분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사회책임 분야에선 산재가 발목을 잡는다. 노 의원실에 따르면 포스코는 계열사를 포함해 지난 5년간 산재 관련 법 위반 사항이 7천여건에 이르고 산재 관련 사망자 수가 43명에 이른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지난해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서 ‘산재 1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광양제철소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작업자 3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 만에 하청 노동자 1명이 추락사했고, 그로부터 20여일 뒤에는 포항제철소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25t 덤프트럭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적인 문제를 노출했다.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포스코에서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폭발·질식·협착·추락·골절 등 산재 사고는 87건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포스코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얻었고,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지난 2월22일 사상 처음으로 열린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장에 현대건설 등 다른 8개 ‘산재 빈발 기업’ 대표들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지배구조 부문도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임원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임원 64명이 지난해 3월 제출한 ‘임원·주요주주 특정 증권 등 소유 상황 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포스코 주식 1만8천여주를 1주당 평균 17만원에 총 26억원어치를 매수했다. 임원들은 적게는 50주에서 많게는 1천주를 샀다. 그런데 이들의 자사주 매입은 공교롭게도 주가가 크게 떨어진 시점이자, 포스코가 회사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기 전에 이뤄졌다. 포스코는 지난해 4월10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1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포스코 주가는 이후 크게 반등했다. 현재 포스코 주가는 37만원~40만원대로 지난해 3월에 견줘 200%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자사주를 매입한 임원들은 1년 만에 평균 1억원 정도의 미실현 이익을 거뒀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임원들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이 사건을 경제범죄형사부에 배당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해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책임경영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기 위해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사회에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자사주 매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원들은 당시 매입한 주식을 현재까지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이-이에스지는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에도 A등급을 줬다. 특히 사회책임 부문에서 200개 평가 대상 기업 가운데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회사는 현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미얀마 군부에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 표적 제재 대상으로 언급한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MOGE)와 가스전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스전 사업 지분은 포스코인터내셔널 51.0%, 인도 국영 석유회사 17.0%,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 15.0%, 인도 국영 가스회사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8.5%를 보유하고 있다.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제재 대상 중 하나로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를 언급했다. 그는 석유·가스 수입이 군부로 유입되지 않도록 다자간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포스코는 노 의원의 지적에 대해 “포스코는 국내외 주요 평가기관들로부터 이에스지 우수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이에스지 평가기관은 독립적인 방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개별기업이 특정 평가기관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는 힘든 구조”라고 반박했다.
■ “
시장에 맡기자” vs “시민사회가 감시해야”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104개 단체)과 금속노조는 지난 5월4일 “포스코는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1만485명의 서명을 포스코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현재까지 별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중선 포스코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달 26일 포스코 1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콘퍼런스콜에서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20년 동안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중단 없이 추진해왔다. 미얀마 재무부 계좌로 수익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노 의원은 산업부가 추진하는 이에스지 표준화 작업이 오히려 이에스지의 ‘선한 영향력’을 망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이-이에스지 초안을 보면 기존 평가지표들과 마찬가지로 기업 이미지만 좋게 포장하려는 값비싼 포장지에 불과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케이-이에스지는 국내 평가기관에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일 뿐 정부가 직접 기업들을 평가하려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번에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한 것은 “용역 수행 기관이 평가지표의 실효성을 확인하고자 시험 삼아 해본 것일 뿐”이라고 산업부 관계자는 밝혔다.
정부가 이에스지 표준화 작업에 나서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이에스지 평가지표의 난립으로 기업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이런 혼란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스지 평가지표는 투자자에게 기업의 비재무적 투자 위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확성이 떨어지면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마치 유능한 증권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가 시장에서 선택받는 구조와 같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정부가 이에스지 정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정부는 기업이 이에스지 관련 공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스지 평가기관이 기업 협찬이나 광고를 받지 않도록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기업이 기후위기와 산재, 생태계 파괴 등 시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이에스지를 시장에만 맡겨두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시민사회는 이에스지가 ‘기업 이미지 포장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시민사회에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이춘재 선임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