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삼성사옥에서 열린 '2010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 참석하기 위해 건물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상속 재산 중 의료 공헌용으로 1조원을 기부하고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미술품 2만3천점 남짓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지난 2008년 고인이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후 회장직을 물러나며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한 공개 약속이 13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이행된 것이다. 당시 조준웅 특별검사가 확인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은 4조원이 넘었다. 다만 이날 유족들은 고인의 계열사 주식 재산 배분 비율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상속인들은 28일 오전 삼성전자를 통해 내보낸 ‘보도자료’에서 이런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고인의 부인 홍라희씨와 이 부회장 등 3남매 간 상속 재산을 어떻게 나눴는지에 대한 내용이 보도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족들 간 협의가 진행 중이다. 최종 합의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다.
유족들이 보도자료에서 밝힌 상속세 ‘12조원 이상’은 국내외 기업인 중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상속세 세입금액 대비 3~4배 수준에 이른다. 세금 납부는 분할(연부연납) 방식으로 올해 4월부터 5년에 걸쳐 6차에 걸쳐 나눠낸다.
의료 공헌용 기부 1조원은 감염병 극복에 7천억원, 소아암·희귀질환 환아에 3천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짜여있다. 감염병 극복 지원금 중 5천억원은 국내 첫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나머지 2천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기반) 확충에 쓰일 예정이다. 기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된 뒤 관련 기관 간 협의를 통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유족들은 밝혔다.
유족들은 소아암 어린이 등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 기관으로 삼는 위원회를 구성한 뒤,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키로 했다. 위원회에는 서울대와 외부 의료진이 고르게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위원회는 전국에서 접수를 받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 환자를 선정해 지원한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일컬어진 개인 소장 미술품 중 기증하기로 한 것은 1만1천여건(2만3천여점)에 이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 등 지정문화재 60건을 비롯해 국내 유일 문화재 또는 최고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유족들은 삼성전자를 통해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 환원 사업을 지속해서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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