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의 아파트 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민심’을 이유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완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입법화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투기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19개 관련 법안을 이달 안에 발의해 조속히 법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2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19개 법률안 가운데 발의된 안은 8개에 불과하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부패사슬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끊어낸다는 각오로 후속 조치를 철저하게 진행해 나갈 것”이라며 “대책 시행을 위해 19개 법률 개정안을 4월 안에 발의하고 조속히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까지 발의된 8개 법률안의 입법 진행 상황을 보면, 공직자가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얻을 수 없게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이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그나마 빠른 편이다.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를 강제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농지법과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단속하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신설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이달 발의됐다. 또 농어업경영체법, 농어촌공사법, 사법경찰직무법, 주택법, 토지보상법 등과 관련한 개정안도 여당 의원들이 발의했지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아직 논의조차 못 한 상태다.
그나마 발의된 경우는 낫다. 모든 공직자가 소속 기관에 재산을 자체 등록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등 11개 법률안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에 참여한 공인중개사나 감정평가사 등의 처벌을 강화한 공인중개사법, 감정평가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특히 1년 미만 보유 토지에 대한 양도세를 현행 50%에서 70%로 강화하는 등 투기적 토지거래를 단속하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개정안도 같은 신세다.
정부는 스스로 법률을 발의해 입법 예고, 법제처 심사 등 시일이 걸리는 절차를 밟기보다 의원입법을 통해 빨리 법률을 제·개정할 계획이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격주로 열리는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때마다 “법안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부동산시장 안정은 물론 정부의 주택공급계획과 추진 일정을 믿고 기다리시는 시장 참여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며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 의지와 달리 상당수 법률안이 발의조차 안 된 것은 기꺼이 나서는 여당 의원을 찾지 못한 탓이 크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종부세나 재산세를 낮추자고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이 있는 상황에서, 과세 강화나 투기 처벌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에 선뜻 나서는 의원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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