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 10층 회의실에서 한시간 남짓 이어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금위를 연 것이나 미룬 것 모두 정치적 이유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달 26일 국민연금기금 관리 및 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한도를 재조정하기로 한 이날 회의에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동학 개미’라는 말을 탄생시킬 정도로 국내 주식 투자의 저변이 확대된 터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연금 개혁, 사회책임투자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연금정책을 함께 물었다.
애초 잡은 인터뷰 날짜가 공교롭게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회의와 겹쳤다. 일찌감치 잡았던 일정을 지난달 29일로 사흘 늦춘 까닭이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명으로 짜인 기금위 위원 중 당연직 5명 안에 들어 있다.
인터뷰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열린 기금위 회의는 ‘삼성물산 합병 사태’ 이후 가장 주목받은 기금위 회의였다는 말이 돌 만큼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동학 개미’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주식 투자의 저변이 넓어진 것과 무관치 않았을 터다.
당시 기금위 회의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한도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등’이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줄기차게 매도하고 있는 데 대해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불만과 원성을 쏟아낸 뒤끝에 열린 회의여서 정치적 자락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이날 회의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4월로 미뤄졌다.
김용진(60) 이사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 10층 회의실에서 한시간 남짓 이어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금위를 연 것이나 미룬 것 모두 정치적 이유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개미 투자자 압력 때문에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올리는 거 아니냐 했는데, 국민연금은 중장기 자산군별 목표 비중(올해 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 16.8±5%)을 놓고 운용한다. 비중을 설정할 때 근거가 있다. 그 근거가 변했냐, 시장이 근본적·구조적으로 변했느냐에 더 관심을 둔다. 변했다면 높이든지 낮추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또 하나 (국내 주식 투자) 허용 범위를 넓혀줄 거냐 문제도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략적 배분의 허용 범위(현재 ±2%포인트)를 설정할 때 시장의 변동성을 감안해야 한다. 시장 변동성이 구조적으로 커졌다면 넓게, 안정적이면 (허용 범위를) 작게 가져갈 수 있는 거다.”
―개인들 반발, 불만, 원성에 따른 게 아니라는 얘기인가?
“다른 로직(논리)이다. 연금도 투자자다. 기관 투자자로서, 중장기 수익을 추구한다. 국민연금에 가장 합리적인 자산배분 구조를 찾는 과정이다.”
―왜 지금? 연례적으로 조정할 시기가 아니지 않았는가?
“배분비중 설정은 연례적인 것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도 있다. 연례적으로 기금운용 계획을 수립하는데 5월에 정기적으로 중장기 자산 배분과 함께 연도별 자산배분 논의가 이루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미-중 무역전쟁 심화, 그런 변수들이 있으면 중간에 조정할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009년 목표 비중에 대한 변경이 이루어진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 같은 큰 변수가 없지 않았나?
“작년 이후 주식시장에 큰 진폭이 있었다. 2000(코스피지수)에서 1400으로 꺼졌다가 다시 3000까지 올라오는 등 큰 변동이 있었다. 변동성이 심해졌을 때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원인·전망을 놓고 면밀한 분석을 같이 해봐야 한다. 그런 변화가 구조적이고 지속적이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을 못 내고 미룬 이유는?
“변동성이 생겼다 해도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것인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엄밀하게 더 깊게 검토하고 분석을 해 그 결과를 갖고 다시 논의해보자고 한 거다. 전반적으로 최근 금융시장 변화에 따라 여기에 대한 탄력성 제고 방안, 운용 방안을 검토할 필요에는 다들 공감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변화의 내용을 주의 깊게 더 살펴보고 하자는 것이었다.”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쪽이 아니라는 말인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내 주식 비중을 줄여가게 돼 있다. 줄여가는 속도가 문제다. 장기적으론, 기금의 볼륨(규모)이 커진다. 그 포션(현재 국내 주식 비중)을 갖고 가다가는 곤란해진다.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모양새가 되는 그런 걱정도 있다. 연금을 많이 투자하기엔 국내 시장에 한계가 있다. 중장기로 보면, 연금 지급 재원이 필요할 때 자산을 팔아야 하는데 그때 국내 시장에 줄 충격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계속 낮춰가게 돼 있다.”
―국내 주식 비중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그런 개념은 따로 없다. 주식, 채권, 대체 투자 비중을 얼마로 할지 중장기 배분 방향을 논의 중이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적정 수익을 올릴 다양한 대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 큰 방향은 해외 투자를 늘려가고, 국내 비중을 줄이게 돼 있다.”
―국내 주식 비중 줄여가야 한다고는 해도 작년 12월부터 올해에 걸쳐 50일 넘게 순매도한 건 심한 것 아니었나?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불만, 원성이 나올 수 있었던 사정 아닌가?
“국민연금은 작년 (코스피지수가) 1400까지 빠질 때 들어가, 결과적으로 지수를 받치기도 했다. 거꾸로 과열, 단기 급등하면 식혀주는 역할도 한다. (국민연금 운용) 메커니즘상 진폭을 줄이고 변동성을 낮추도록 돼 있다. 즉,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은 낮춰 시장 신뢰를 높이고 투자활동을 할 중요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김 이사장은 “자산군별 특성, 위험도를 감안해 적정 수준을 찾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며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해외자산을 55% 수준까지 늘리게 돼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2020년 말 17.3%에서 2025년 15% 내외로 맞출 계획이다. 작년 말 현재 국민연금의 해외 부문 비중은 37% 수준이다. 2025년이면 해외 대 국내 비중이 55 대 45로 되고, 해외 부문 55% 가운데 주식은 35%, 채권 10%, 대체투자 10%포인트 내외로 맞추게 돼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9.7%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최근 10년 내 2019년(11.31%)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지난 한해 거둔 수익금만 72조1천억원에 이른다. 그 때문인지 가을 정기국회 때면 으레 터져 나오던 수익률 저조 질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2년 연속 양호한 수익을 올린 것에 대해 “다행”이라며 “국민연금은 기관 투자자 중에서도 볼륨이 큰 ‘유니버설’ 투자자여서 결국 국민 경제, 세계 경제의 흐름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시장 흐름에 따라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시장 평균을 하회하지 않는 게 목표다. 지나치게 높은 수익을 추구하면 위험을 과다하게 부담해야 한다. 매년 같을 순 없고 평균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비교적 높은 수익률은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 덕분이었나?
“투자 대상, 지역을 골고루 다변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자체 포트폴리오(자산배분) 전략이 예전보다 정교화돼 있다. 운용 인력 측면에서 어려움은 많지만, 연금기금 자산 운용에 특화된 조직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맞는 투자 전문 인력이 2010년 110명 수준에서 작년 288명으로 늘었다. 2.7배다. 앞으로 더 늘려야 한다. 더 뽑고 현재 인력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연금 운용에 맞는 쪽으로….”
현행 연금제도는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돼 있다. 저출산·고령화 쪽으로 인구구조가 바뀌고 저성장·저금리 흐름을 고려할 때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정부의 개혁 방안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데, 후속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이사장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사안이나,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논의를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다”며 “정부에서 제시해놓은 방안이 논의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부담, 일정 등을 얘기하는데,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미래의 문제이니, 다 같이 논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야, 노사 협상처럼 하기는 어렵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1년에 20만~30만명씩 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539만명에 이른다. 가입자 수 2210만명보다는 적지만 차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생산가능인구 수가 정체되거나 줄고 있으며, 연금 가입자도 그런 흐름이다. 사각지대를 줄인 덕분에 가입자 수는 아직 늘어나고 있지만, 증가 속도는 둔화했다. 보험료를 내는 이들은 한정적이고 연금을 받는 이들은 점점 늘어 연금 추계상 2029년도에 보험료 수입과 연금급여 지출이 균형을 이루고, 그 뒤엔 보험료 수입 쪽이 더 적게 된다.
김 이사장은 이와 연결된 연금 고갈 시점에 대해 “2008년, 2013년 추계 땐 2060년이었고, 2018년 추계 때 3년 당겨졌다”며 “인구구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금 개혁을 마냥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작년 기획재정부의 재정 추계 때 다시 1년 당겨진 것으로 나왔다. 인구구조는 나빠지고 저성장, 저금리 등 운용 여건도 안 좋아지고 있다.”
국내외 산업·금융계에서 경영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이에스지(ESG, 환경보호·사회책임·지배구조)는 국민연금에도 중요한 현안이다. 국민연금은 이에스지를 자산 운용의 주요 지침으로 삼아 이와 직결된 사회책임투자 적용 자산군 규모를 내년까지 전체 기금 자산의 5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본격 도입 초기인 작년 말 기준으로는 10% 수준이었으며, 올해 말 25%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김 이사장은 이에스지 투자에 대해 “옛날엔 재무 요소만으로 투자했는데,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 통합 투자전략을 펴는 것”이라며 이는 기업들에 큰 의미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지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며 공동체의 유지, 존속을 위한 룰(규칙)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지금까지는 소비자, 일반 시민, 정부가 나서다가 이제 투자자도 나선다는 게 큰 특징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강제가 아니고 (문제 있는 기업엔) 투자를 안 할 것이라고 하는 거다. 강제력이 없으면서도 실효성은 있는 방법이다. 법률보다 더 실효성 있고 통용되는 룰로 가는 거다.”
김 이사장은 “(이에스지가) 기업들의 중장기 리스크 관리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실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고 투자자는 수익을 얻는다. 이에스지 자체가 기업의 무형·무체 자산, 자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옛날엔 무형 자산이라 하면 연구·개발(R&D)에서 비롯되는 상표권이나 특허였다면 이젠 이에스지 투자가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될 수 있다. 기업 쪽 인식도 바뀌고 있다. 예전엔 이른바 ‘착한 기업’만 하다가 이젠 모든 기업들이 비용 아닌 투자로 생각하고 나서야 한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끌려다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자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알아서 전반적인 체질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용진 이사장은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에서 복지노동예산과장, 공공혁신기획팀장, 대외경제국장, 사회예산심의관, 2차관을 거쳤다. 경제 관료 출신인데다 21대 총선 출마 이력 탓에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이사장 임명 당시 ‘비전문가의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에 국민연금 쪽은 “사회복지 재정과 공공기관 혁신 분야에서 역할에 맞는 전문성을 쌓아왔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 본인은 이번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이 공장이라면 기계를 돌리는 엔지니어는 전문지식을 갖춘 자산 운용 전문가들”이라며 “이사장은 전문 분야에 개입할 생각도 능력도 없고 다만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녹이 슬었는지 살피고 녹이 슬었다면 기름을 쳐주고 고장이 나지 않도록 리스크를 관리하며 더 좋은 성능을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는 자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