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낮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위치한 한 상점에 ‘하라는 대로 다 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쓴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태원 상권 자영업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5월 발생한 집단감염을 계기로 ‘위험지역’이라는 낙인이 찍혀 줄폐업에 이르렀다며 형평성 있는 방역대책과 지원을 호소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각 나라의 경제주체별 부채 구조는 경제상황에 대한 각 나라의 대응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와 주요국들의 현재 경제주체별 부채 구조가 다른 것도 지난 10여년간 정부 정책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영국 등 주요국들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가계가 부채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이들 정부는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으로 그 부담을 떠안는 과정에서 국가부채(정부부채)가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는 과다부채에 시달리는 반면에 정부는 상대적으로 부채가 적은 것은 역대 정부에서 재정지출을 아끼는 한편으로, 가계부채를 경제성장의 불쏘시개로 사용해온 데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부채 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 들어서 2018~2019년에는 가계부채를 경제성장률 이하로 낮춰 연착륙 경로를 밟는 듯했으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관리 범위를 벗어났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2019년 말 국내총생산 대비 95.3%에서 지난해 3분기 100.6%로 5.3%포인트 증가했다.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을 통한 부동산·주식 매수 열기가 이어진데다, 생계가 어려운 계층의 생계비 대출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이 지난해 3분기 890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 증가했으며, 기타대출(695조원)은 금리 하락, 생활자금 수요 증가 등으로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6.8%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777조원)의 경우 같은 기간 15.9% 증가해 평균(7%)을 두배 이상 웃돌았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우리보다 피해가 심하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선진국들이 국가부채가 전통적인 평가잣대로는 임계치를 넘었음에도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재정긴축 정책을 옹호해온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로랑스 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4일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각 국가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대한 단기 수치 목표를 버리고, 대신에 (재정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 목표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경제가 정상 수준에 가깝게 돌아올 때까지 공공 부채 부담의 상승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난지원금의 경우 미국은 이번에도 전 가구에 600달러씩 지급하는 안을 마련했는데, 이는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걸 국가가 떠안는 걸로 볼 수 있다”며 “우리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긴 했는데 굉장히 약했다. 그렇다 보니 정부는 건전한 반면에 가계와 기업 부문은 상당히 안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임대료의 경우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대출보다는 직접 지원을 해주는 게 나은 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에 집합금지 업종에는 300만원을 직접 지원하면서 ‘임차료 융자 프로그램’(업체당 1천만원 한도)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도록 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대출은 나중에 벌어서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빚 부담만 늘어난다”며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국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할 우려가 있는 만큼 재정이 지속가능하도록 증세 등의 중기적인 계획을 지금부터 마련해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실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정부부채가 좀 늘어나더라도 그게 잘 쓰여서 가계부채를 줄일 수 있으면 그건 의미 있는 정부부채 증가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런데 부유층한테서 세금을 제대로 거둬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면 정부부채도 늘지 않고 가계부채가 줄어드니 이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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