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씨유는 10만여 종사자들이 ‘아동학대 감시요원’ 역할을 하도록 하고, 포스단말기에서 원터치로 아동학대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 지난 5월 온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경남 창녕의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사연에는 편의점이 등장한다. 부모로부터 가혹하게 학대당하던 9살 초등학생이 목숨을 걸고 집을 탈출해 숨어 있다가 저녁에 편의점으로 피신했는데 이를 본 한 시민의 신고를 통해 보호를 받게 됐다. 지난 8월 서울 마포구에서 술취한 부모로부터 폭행당해 피 흘리며 맨발로 탈출한 10살 초등학생이 피신한 곳도 동네 편의점이었다.
# 지난 10월 추석 연휴에 4살 이후 고아인 줄 알고 살아온 24살 여성이 20년 만에 극적으로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된
감동스토리의 배경도 편의점이었다. 20년간 애타게 딸을 찾는 가족이 신고한 사진이 편의점 판매단말기(포스)의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에 뜨면서 실종 당사자가 직접 연락해 20년 만에 부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지에스25는 전국 56개 매장(슈퍼 포함)에 전기차 급속충전 장치를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다.
1000만 1인가구, 24시간 생활문화, 매장내 간편식 취식 증가 등 생활양식 변화와 함께 성장해온 편의점이 최근 공공성 기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인이 상주하는 동네가게와 달리 시간대별로 바뀌는 아르바이트생이 바코드로 결제하는 편의점은 편리성과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개인화한 도시생활의 상징이다. 업계 1, 2위인 지에스(GS)25와 씨유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2565억원, 1966억원으로,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를 넘어서며 성장하고 있다. 몸집과 수익을 키워온 편의점들이 고유의 네트워크와 정보처리 기능을 활용해 공동체적 가치를 수행하는 사례들이 잇따라 알려지고 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정부 부처들은 아예 편의점을 활용해 행정 사각지대를 커버하고 정책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청은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8월 중순부터 편의점 업계와 함께 아동학대 예방 및 신고 활성화를 위한 ‘도담도담’ 캠페인에 나섰다. 씨유를 운영하는 비지에프(BGF)리테일은 편의점 근무자를 신고요원으로 지정해 아동학대가 의심스러운 경우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포스 단말기에 원터치 아동학대 신고 메뉴를 추가했다. 지에스25와 세븐일레븐은 도시락, 빵 등 자체개발 상품에 아동학대 예방과 신고 문구를 담아 판매한다. 이마트24 등은 손님들이 주목하는 포스 단말기 화면에 경찰청의 아동학대 예방 및 신고 캠페인 영상을 노출한다.
아동권리보장원 실종아동전문센터는 2018년부터 씨유, 세븐일레븐 등과 협약을 맺고 포스 단말기와 도시락 포장에 실종아동 사진과 인적사항을 노출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편의점산업협회와 노인학대예방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5년부터 각 편의점 업체와 협약을 맺고 긴급재해와 재난 상황시 편의점 물류센터를 활용한 구호물품 보관과 배송을 지원하고 있다. 씨유 홍보팀은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2018년 제주공항 폭설 등 고립 상태의 재난상황에서 현지 편의점과 물류센터에 보관중인 재해구호키트를 지급해 정부의 구호를 지원했다”며 “행정안전부가 재해구호키트를 보관하는 물류센터는 파주와 함양 2곳뿐인데 협약을 통해 우리가 전국 30개 물류센터에 공간을 할애해 보유하고 있다가 긴급상황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9년 5월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 개점으로 본격화한 국내 편의점 사업은 초기 소매점 위주에서 공공요금 수납, 현금지급기, 택배 수납, 세탁서비스 등 다양한 생활편의를 제공하며 서비스 영역을 확대해 왔다. 편의점 업계는 소용량 포장, 간편식 개발 등 1인가구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편의 제공 등에 주력해왔는데 최근엔 ‘공공플랫폼’ 기능을 앞세우고 있다. 1인가구, 맞벌이 환경에서 편의점은 출퇴근길 택배 수령과 공공요금 수납의 거점이 되고 있으며, 심야에 진통제·소화제 등 14종 상비약품도 구매할 수 있다.
씨유와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업계는 경찰청과 제휴를 맺어 전국 아동학대 신고와 보호시설의 기능을 하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 변화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지에스25는 전기차 급속충전 매장(지에스슈퍼마켓 포함)을 현재 56곳에서 2023년까지 5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고, 이마트24는 50개 매장에 쏘카존을 설치해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에스25는 애견보험 판매, 전동킥보드 충전과 주차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이 공공인프라로 기능하는 배경엔 모세혈관처럼 촘촘한 전국단위 네트워크와 효율적인 정보처리 시스템이 있다. 국내 편의점 수는 지에스25와 씨유가 각각 1만5000개, 세븐일레븐 1만400개, 이마트24 6천여개, 미니스톱 3천여 점포 등 총 5만개에 이른다. 하루 평균 결제건수는 1500만건으로, 2800만 경제활동인구가 이틀에 한 번꼴로 이용하는 셈이다. 도시에서는 대개 5분 거리 안에 있고 24시간 운영된다. 20년간 못찾은 딸 사진이 본인에게 노출된 공간이다. 문턱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찾을 수 있어 겁에 질린 맨발의 아이도 문을 열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편의점은 포털 등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온국민이 이용하는 가장 촘촘하고 효율적인 플랫폼이다. 실종아동찾기에 이어 최근 아동학대 예방에 적극 나서는 씨유의 한 관계자는 “전국 1만5000여 점포의 종사자와 아르바이트생 등 10만명이 아동학대 여부를 지켜보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마트24, 씨유 등은 편의점의 전국 물류시스템을 활용해 긴급구호물품을 보관, 운송하는 역할을 통해 정부의 재해구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가 공공캠페인 등 지역사회 공헌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매장 포화상태에서 브랜드 차별성 강화와 함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경험도 있다. 지에스25 관계자는 “편의점의 현금지급기(ATM)에서 별 매출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기 이용고객의 40%가 물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과다출점 논란을 빚던 편의점 업계의 촘촘한 판매망이 민간 차원에서 안전과 재난대비를 위한 지역사회 공공인프라로 기능하는 뜻밖의 현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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