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전지구적 협력을 통해 공산주의를 재발명할 것인가, 야만적인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를 것인가?”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로 꼽히는 슬라보이 지제크는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러시아의 한 매체에 이렇게 썼다.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는 코로나 위기에 맞서기 위한 ‘재발명된 공산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 마스크, 진단키트같이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의 생산을 조정하고, 모든 실직자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함은 물론, 이 모든 일을 시장 메커니즘을 버려가며 해야 한다.” 7월 초 한국에 번역 출판된 <팬데믹 패닉>에서 그는 “위기의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자다”라며, ‘재발명된 공산주의’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선임연구원인 그는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다음달 2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다. 이달 초 전자우편을 통해 그를 인터뷰했다.
―영상 강연 제목이 ‘뉴 노멀리티(정상성)를 향한 고된 여정’이다. 무슨 의미인가?
“‘올드 노멀리티’(우리의 삶의 방식을 규정해온 기본적인 관습들)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노멀리티를 구축하는 길고 어려운 과정의 시작 단계에 있으며, 이 과정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감염병이나 생태적 재난 등 우리가 처한 위기를 모든 차원에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인식에 기반한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변화를 가져올까?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보건 위기가 경제 위기, 생태 위기, 국제적인 갈등 등과 결합하는 ‘퍼펙트 스톰’(두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요컨대, 팬데믹은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갈등을 끄집어내는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난제들의 결합은 매우 위험하지만 엄청난 해방의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 상태로의 복귀’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기회라도 얻으려면 우리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팬데믹 패닉>에서 전지구적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팬데믹은 전지구적으로 조율된 대응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더욱이 코로나 백신이 나오더라도 또 다른 감염병과 기후변화 등 전지구적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북극해의 대륙붕에 언 채로 갇혀 있던 메탄이 방출되기 시작했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라. 재난 영화에서처럼 부유층은 일반 시민들의 오염된 거주지에서 완전히 분리된 영토를 갖고 싶어 하지만, 문제는 (자를 수 없는 탯줄처럼) 인간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제크는 <팬데믹 패닉>에서 “지금이야말로 ‘미국 (또는 다른 누구든) 먼저!’라는 모토를 버려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같은 배에 타고 있다”고 썼다.
―‘재발명된 공산주의’가 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심지어 보수세력이 집권한 국가에서도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일련의 대책들을 의미한다. 여러 나라에서 ‘객관적인’ 시장의 법칙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결정들이 내려지고 있다. 국가가 산업에 직접 개입하고, 굶주림 예방과 의료 조치를 위해 수십억달러를 배분하는 게 그 예다. 유럽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운 버전의 ‘전시 공산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슬라보이 지제크 약력
· 1949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출생
· 파리8대학교 정신분석학 박사 학위
·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환교수
· 류블랴나대 선임연구원
· 경희대 에미넌트 스칼라 교수
· 주요 저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계급투쟁> 등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