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농촌지역 한 곳의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준비중이다. 지난해 농민수당을 도입한 전남 해남군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19의 대응책으로 전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기본소득 논쟁이 본격화됐고, 이 논쟁의 갈래 중에 일부는 분명 농민과 농촌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지급한다는 ‘보편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지만, 보편성을 제외한 다른 요건들(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을 충족하며 특정 집단에 한정된 형태를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분류한다. 농민·농촌 기본소득도 이에 해당된다.
농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성 수당에 대한 요구는 급격히 확대되고, 기본소득 논의로 옮겨가는 추세다. 지난해 전남 해남군이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농민수당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농민수당 조례 제정 운동이 전개됐고, 올해 2월엔 전국 33개 농민·시민단체가 모여 ‘농민기본소득 전국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개인으로서 농민이 아닌, 지역으로서 농촌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경기도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농촌 중에 한 곳을 골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농촌기본소득은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주민에게도 지급된다는 점에서 농민기본소득과 차별화된다.
올해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12월3일 오전엔 현실의 정책으로 모색되고 있는 ‘농촌기본소득 정책실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질 예정이다.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 효과성 제고 방안'이란 제목의 이 세션은 실제 이 정책의 설계 연구를 맡은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으로 개최한다. 이날 발제를 맡은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와 김현철 코넬대 교수(정책학)는 ‘기본소득 실험'의 설계, 효과 등을 여러 사례와 이론을 통해 살펴볼 예정이고, 또 다른 발제자인 이창한 지역재단 기획이사는 균형발전과 환경, 공동체적 가치의 측면에서 농촌기본소득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자로는 루이스 토렌스 멜리치 바르셀로나시 사회혁신 디렉터, 강위원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원장,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정해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참석하고, 토론의 좌장은 이원재 랩2050 대표다.
이날 토론의 결과는 현실의 정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는 내년 중에 농촌 지역 중에 하나를 골라 해당 지역의 전체 거주민에게 조건 없는 지역화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해당 사업을 위한 조례안과 내년도 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농촌기본소득의 대상 지역은 고령인구 비율, 소멸위험 지수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29개 면 가운데 하나가 될 예정이고, 선정 지역과 지급 금액, 지급 기간 등의 최종안은 아직 발표되진 않았다. 농촌기본소득은 전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본소득이란 의제를 상대적으로 작은 단위에서 검증한다는 ‘사회실험'으로서의 취지와 도심의 고밀화로 빚어진 문제를 개선하고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으로서의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경기도가 구상 중인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특정 지역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해외 사례와 구분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은 특정 지역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기존 실업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해 지역과는 관계가 없었다. 지역 전체가 특정 정책이나 사회실험의 대상이 될 경우 정책에 영향 받은 각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과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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