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 국내 대형 종합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서 있다. 연합뉴스
내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본격적인 통합 절차를 앞두고 정부와 산업은행의 자금 조달 방식이 적법한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통합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어 법원 결정이 두 항공사 통합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22일 한진칼 공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오는 25일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한진칼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의 첫 심문 절차를 진행한다. 이 가처분 소송은 케이씨지아이가 소유한 투자 목적 회사 ‘그레이스홀딩스’ 등 8곳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가처분소송은 신속한 집행을 위해 재판부가 통상 한두 차례 심문 절차를 거친 뒤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고, 산은의 한진칼 유상증자 납입기일도 12월2일이어서 그 전에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케이씨지아이 쪽 손을 들어줄 경우 산은→한진칼→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자금 조달 계획이 시작 단계부터 막히게 된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할 경우 매각이 무산돼 기존 계획대로 (채권단) 관리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산은은 한진칼에 8천억원 규모 제3자 유상증자를 받아 한진칼 지분을 획득하고 이 가운데 7300억원을 한진칼을 통해 대한항공의 2조5천억원 유상증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케이씨지아이는 산은의 자금 조달 구조가 신규주식을 배정받을 기존 주주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상법 418조는 기존 주주의 신주 인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각 회사 정관에 정한 예외상황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한진칼도 정관에 ‘긴급한 자금조달’ 목적에 한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하고 있다. 케이씨지아이와 한진칼은 이를 토대로 주주 배정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할 순 없었는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제3자 배정 요건에 해당하는지 등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과거 유사 판례를 보면 2009년 경영권 다툼을 벌이던 ㄱ공작기계 제조사는 재무구조 개선 목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지만 법원이 `주주 배정 유상증자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봐 신주 발행이 무효화됐다. 지난해 ㄴ컴퓨터유통기기 회사도 재판부가 같은 판례를 인용해 신주를 무효 처리했다. 반면 2014년 경영권 분쟁 중이던 ㄷ제지사가 설비 투자 목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했을 땐 법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신주 효력이 유지됐다. 당시 재판부는 ㄷ제지사가 재무개선(워크아웃) 중이어서 노후 설비를 교체할 필요성이 있었고 주주 배정 유상증자는 참여가 저조했을 거라고 봤다. 이듬해 경영권 분쟁 중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 ㄹ페인트기업도 ‘회사채 상환 목적’을 적법한 사유로 인정받았다.
케이씨지아이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주주 배정이 아닌 3자 배정을 선택한 건 산은이 조 회장의 백기사를 자처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산은이 한진칼에 부실기업을 떠넘긴 것이라 긴급한 자금조달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채권단 관계자는 “조 회장에게 특혜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항공사 통합 자금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라 경영권 분쟁 지원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은은 3자배정이 아닌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최소 2개월 이상 소요돼 긴급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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