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라임·옵티머스로 대표되는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업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사모펀드를 고리로 한 금융 사기 사건에 유수의 은행, 증권사까지 얽혀 큰 충격을 안겼다. 금융감독 당국도 제 역할을 못 했을 뿐 아니라, 감독 당국 관계자들조차 불법에 얽힌 기막힌 정황까지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김기식(54)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금융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확 풀면서 사후 감독체계를 마비시킨 게 사모펀드 사태의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은 현행 감독체계는 액셀(정책)과 브레이크(감독 기능)가 한곳(금융위원회)에 몰려 있어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금융지주 회장들의 잇따른 ‘셀프 연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 오너(사주)처럼 권한만 행사할 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관련 법에 책임성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더미래연구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정책실장, 사무처장, 정책위원장을 지낸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치권에 몸담은 바 있고, 2018년 금감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민간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10월30일 서울 여의도 더미래연구소 사무실에서 했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의 핵심이 뭐라 보는가. 다른 금융 사고들과 비교할 때 특징적 차이라든가?
“이전 대형 사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우리 금융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사기 사건이다. 동양증권 시피(CP·기업어음), 디엘에프(DLF) 사건 등 과거 대형 금융 사건은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팔았다는 ‘불완전 판매’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이와 달리 라임은 투자한 해외무역펀드가 사실상 전액 손실이 난 사실을 숨기고 판매했다. 사기다. 그 과정에서 펀드 간 돌려막기, 이른바 ‘폰지 사기’, 다단계 사기 수법이 동원됐다. 옵티머스는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엉뚱한 곳에 투자했다. 불완전 판매를 넘어 완전 사기 사건이다.”
―평소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 책임론’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당장 문제로 떠오른 것은 검찰, 금감원 쪽 아닌가?
“정·관계 로비, 검사 술 접대 문제는 사고 후 수습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한 사건만이라면 해당 개인들의 일탈행위로 볼 수 있겠지만, 2015년 금융위가 사모펀드를 육성한다며 규제를 완화한 뒤 연이어 사건이 발생했다. 범죄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금감원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사모펀드와 관련해선 금감원에 제도적으로 권한이 거의 없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안 했고, 무엇을 해야 했다는 것인가?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터지고 나서 금융위가 조치하고 있는 것을 역으로 이해하면 된다. (펀드 간) 자전거래를 자산의 20% 이내로 규제하고, 금감원에 (사모펀드 실태를) 전수조사하도록 하고, 사모펀드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회사에 의무와 법적 책임 부여를 하고 있는데 그런 조치야말로 이전에 뭘 잘못했는지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런 조치들을 2015년 규제 완화하면서, 이런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해야 했다.”
―금감원에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된다.
“금융정책은 금융위, 감독은 금감원이 권한을 가진 걸로 이해하는데 아니다. 법적으로 정책, 감독 모두 금융위 권한이다. 법에는 금융위 권한을 금감원에 위임할 수 있는 근거 조항만 있고, 금감원은 권한을 위임받아야 감독 권한을 행사한다. 현재도 제도적으로는 사모펀드와 관련한 금감원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금감원에서 조사 들어가고 조치하고 있는데 제도적 근거가 모호한 상태에서 행정지도로 하는 것이 많다. 그마저도 금융위가 위임해주지 않으면 못 한다.”
―금감원 쪽에서 져야 할 책임은?
“작년에 라임 사태 터진 뒤에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했어야 한다. 비판받아야 한다. 전직이라 해도 금감원 직원들이 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것은 문제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왜 벌어졌는지는 명확히 해야 한다.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하면서 산업 육성 때문에 감독 기능을 마비시킨 것,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당시 19대 국회 정무위(금융위 소관 상임위) 소속 아니었는가?
“당시 자본시장법 개정의 핵심은 자산운영업 요건 완화였다. 19대 임기 말 법 개정이 되면서 사후적으로 시행령, 감독규정 문제를 못 챙겼다. 이번 사건은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 간 분리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정책 부서와 감독 기능은 분리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된다. 금융위 감독 기능을 떼어 금융감독원으로 넘기고, 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 분야와 합쳐 ‘금융부’를 만드는 방식으로 정책과 감독을 분리해야 한다.”
―흔히 정책 권한을 액셀(가속장치), 감독 기능을 브레이크(제동장치)로 비유하는데, 분리돼 있으면 금융 분야에서 뭐 하나 결정도, 추진도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분리한다고 따로 노는 게 아니다. 분리했을 땐 협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쪽이 두 기능을 통째로 갖고 있으면 정책적 목적에 의해 감독 기능이 왜곡된다. 금융 영역에선 규제 완화를 하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사전 규제를 풀면 사후 감독 강화로 보완해야 한다. 이렇게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니 사고가 나면 규제를 강화했다가 시일이 지나면 또 풀고, 다시 사고가 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미 정권 후반기다. 정부조직 개편까지 필요한 것이라, 정책과 감독의 분리는 어려울 거 같다.
“차기 정부의 과제라 본다. 다만,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이 다음 정부에선 해야 한다는 쪽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뜻을 밝혔다. 시행은 다음 정부에서 하더라도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하고, 시행은 차기 정부에서 하는 방법도 있다.”
―너무 멀어 보인다. 정책과 감독의 분리에 앞서 당장 필요한 것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에 이어 시행령을 마련 중이다. 행정지도로 할 게 아니고, 그에 따른 시행령, 감독규정을 세세하게 규정해야 한다. 금소법에 따르면 소비자들에게 금융상품을 팔 때 6가지 원칙을 따르게 한다. 그중 하나가 적절성·적정성 원칙이다. 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겠는가. 시행령, 감독규정에 넣어야 한다.
라임·옵티머스에 투자한 이들 중 (이 상품을) 제대로 알고 한 사람 얼마나 되겠는가. 그냥 은행 거래하던 이들이 금리는 낮은데, 4%가량 수익 보장된다고 하니, 가입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은행, 증권사를 보고 펀드 상품을 산 거다. 그런데 판매사는 책임이 없다? 판매 금융기관의 평판을 믿고 투자를 했다면, 그에 맞게 책임을 져야 한다. 판매 수수료는 선취하면서, 책임을 안 진다니, 말이 안 된다.”
김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금융위 책임론을 재차 강조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때 들었던 명분이 전혀 합당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때 ‘선수(전문가)들끼리 게임을 하고, 그 결과는 자기 책임이라, 규제를 최소화한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은행에서 공모펀드 팔듯이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게 펀드 쪼개기였다. 규제 완화의 명분과 달리 사실은 선수들끼리 하는 판이 아니게 만들어놓고,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거다. 금융소비자 보호의 적정성·적절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 투자 금액만이 아니고 투자 경력을 따져 제한하고, 판매처도 상품 성격에 맞게 제한해야 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옵티머스 자문단에 이름을 올려 구설에 올라 있다. 모피아(금융위,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무부의 영문 명칭+마피아)의 응집력, 이해관계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말하기 조심스럽다. 지금은 정·관계 로비, 검사 접대 얘기를 주로 하는데, ‘모피아 네트워크’도 작동한 게 아닌가 싶다. 고문직을 수락하는 순간 금융당국이나 금융회사에 어떤 사인을 주는 것인지 모를 분이 아닐 텐데, 왜 그랬는지 의문이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 김봉규 선임기자
―라임·옵티머스 사태 초기에 ‘권력형 게이트’ 또는 ‘검찰 게이트’라는 성격 규정이 있었다. 어떻게 보는지?
“공감하지 않는다. 김봉현(라임의 실질적인 전주로 알려진)이 왜 저런다고 생각하는가? 김봉현을 보면서 ‘킹크랩 사건’의 김동원 생각이 나더라. 언론사에 옥중편지를 보내고 이 사람 저 사람 물고 들어가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보내는 게 똑같다. 왜 그럴까? 두 가지 목적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나는 주범이 아닌 종범 내지 공범이 되어 형량을 낮추는 것, 또 하나는 나중에 재기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 두 가지 목적에서 “김봉현은 완전 성공하고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분석이다. “검찰 수사의 방향을 확 틀었다. 정·관계 로비, 검사 술 접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주범이나 몸통이 아니고 종범 내지 공범이 되는 거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횡령했다는데 돈이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른다.” 김 위원장은 “정·관계 로비, 검사 술 접대도 드러나면 엄단하는 게 당연하나 범죄 행위의 전모를 밝히고 빼돌린 돈을 찾아내 환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금융 사건, 경제 범죄와 관련된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줄이고 ‘증권범죄수사단’을 폐지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본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고, 동학개미 등 많은 국민이 자본시장으로 오는데, 정책·감독의 문제, 범죄적 행위에 사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 다 문제가 있다. 정책에 눌려 감독은 뒷받침을 못 하고, 검찰의 전문 부서 폐지로 역량이 축소돼 사법적 단죄도 어려워지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의 4연임이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어떻게 보는가?
“심각한 문제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임하고자 하면 3, 4연임을 누구도 못 막을 구조가 돼 있다. 오너(사주)도 아닌 자가 오너처럼 행동한다. 금융권의 보수적 문화 속에서 황제처럼 군림한다. 일반 사기업의 전문경영인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셀프 연임 구조는 잘못된 거라 본다. 다만 정부나, 금융당국이 막후에서 인위적으로 시이오(CEO) 선임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금융회사의 실적이 좋은데 부분적 일탈만으로 연임 불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민간 금융회사인데.
“대과 없으면 연임하는 게 맞다. 다만, 우리 금융 풍토에서 3연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3연임을 하면서 내부에서 문제가 많이 생긴다. 내부 조직이 경직된다. 더 중요한 건 문제 발생에 따라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통해 불행의 씨앗을 뿌린 금융위 공무원들은 책임 추궁조차 안 받고 있고, 금융지주 회장들도 아무 책임을 안 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금융지주 회장은 황제적 권한을 갖는 반면,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 현행법으로 지주 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디엘에프 사건에서 보듯 우리금융, 하나금융의 각 계열사 시이오에게는 그나마 포괄적 감독 책임이라도 지우는데, 지주 회장은 여기서도 빠진다. 어떤 금융 사고가 나더라도 지주 회장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법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라임 사태 봐라. 신한금융지주의 여러 계열사가 관련돼 있는데 지주 회장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권한은 100% 행사하는데, 책임은 전혀 없다. 셀프 연임보다 더 큰 문제다.
지주 회장에게도 포괄적 감독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명시해야 한다. 라임 사태처럼 여러 계열사가 관련됐고, 영업 일선의 불완전 판매 정도가 아니라 구조적 사기 사건이면 회장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셀프 연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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