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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달라진 한은, 저신용 회사채 매입에 8조 댄다

등록 2020-05-20 18:17수정 2020-05-21 02:02

회사채 매입에 첫 직접 대출
정부 1조 출자·산은 1조 대출

모두 10조원 규모 SPV 만들어
투기등급 떨어진 회사채도 매입
필요할 경우 20조로 규모 확대
윤면식 한은 부총재(왼쪽부터 두번째)와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세번째),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네번째) 등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사채·CP 매입기구 설립 등의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 제공
윤면식 한은 부총재(왼쪽부터 두번째)와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세번째),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네번째) 등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사채·CP 매입기구 설립 등의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 제공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정부·산업은행과 공동으로 저신용 등급 회사채를 매입하는 기구에 직접 대출하기로 합의했다. 보수적인 자금 운용으로 이름이 높은 한은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과거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선 셈이다.

정부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10조원 규모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을 위한 특수목적기구(SPV) 설립 방안을 의결하고, 필요할 경우 20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기구에 한은이 8조원을 직접 선순위 대출을 한다. 나머지는 정부가 산은을 통해 1조원을 출자하고, 산은이 1조원을 후순위 대출을 해준다. 지원 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2조원까지는 정부와 산은이 손실을 부담하고, 이를 넘을 경우 한은이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브리핑에서 “정부의 출자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과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의 전문성이 더해지는 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협업모델”이라고 말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관계기관이 머리를 맞대면서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 정책공조의 새로운 페이지를 함께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매입 대상은 우량 및 A등급을 위주로 하되 투기등급인 BB등급 회사채(만기 3년 이내)도 포함한다. BB등급은 코로나19 충격으로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락한 이른바 ‘타락천사’(Fallen Angel)로 제한된다. 기업어음과 단기사채는 A1부터 A3 등급까지 매입대상이다. 또 이자보상비율이 2년 연속 100% 이하인 기업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되며, 매입 금리는 시장 금리에 가산 수수료(최대 1%포인트 이내)가 붙는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브리핑에서 “실물경제 상황과 금융불안 리스크를 감안할 때 신용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정책당국의 금융시장 안정 의지가 시장에 보다 명확하게 전달되고, 신용시장 안정화 효과도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이번 행보는 신용위험이 있는 일반 회사채 매입에 직접 개입하는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한은은 국채는 직접 매입했지만, 회사채는 국책은행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에 그쳤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은이 신용리스크가 있는 회사채 매입에 직접 들어가는 건 지금까지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특수목적기구의 사무국은 산은에 설치된다. 이 기구의 전반적인 운영은 정부·한은·산은 등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되겠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사무국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한은의 책임 회피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현행 한은법은 한은이 영리 기업에 긴급 여신을 제공할 경우 해당 기업의 업무와 재산상황을 조사·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조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운영하는 방식을 벤치마크한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은 미국은 정부 보증이 10%이고, 연준이 특수목적기구 운영 책임을 진다는 점이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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