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기업집단 자료제출 위반행위에 대해 ‘고의성’을 우선으로 한 검찰 고발 기준을 처음 마련했다.
공정위가 9일 행정 예고한 ‘기업집단 관련 신고 및 자료제출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고발지침’ 제정안을 보면, 위반행위의 인식 가능성(고의성)과 중대성을 정도에 따라 △현저한 경우(상) △상당한 경우(중) △경미한 경우(하)로 각각 구분했다. 공정위는 특히 고의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중대성이 경미해도 고발한다는 기준을 세워 고의성을 우위에 뒀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범죄 구성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고의성”이라며 “이런 기준에 맞춰 우선순위를 뒀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공정위는 기업집단 자료제출 위반행위에 대해 명문화된 기준 없이 자체 판단을 거쳐 검찰 고발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고발 여부가 결정된다. 인식 가능성의 상·중·하를 가르는 판단 기준은 행위자(동일인)의 의무위반에 대한 인식 여부, 행위의 내용·정황·반복성 등이다. 예를 들어, 위반행위가 계획적이거나 행위자가 알고도 묵인한 경우엔 인식 가능한 정도가 ‘현저’(상)하다고 판단해 중대성의 정도와 관계없이 검찰에 고발하게 된다.
공정위가 이번 기준을 마련한 것에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사례에서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정위는 이해진 네이버 설립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하면서 20개 계열회사를 누락한 것에 대해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반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경우 지난 2016년 공정위에 제출한 지정자료에 5개 계열사 빠뜨렸고 이에 공정위는 2018년 고발 대신 경고 처분만 내렸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공정위를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김범수 의장을 약식 기소했다. 두 사안 모두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김 의장의 경우 지난 2월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쪽은 “카카오 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네이버 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등을 고려해 기준에 반영시켰다”며 “제정안 마련으로 공정위 법 집행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향상되고 기업집단의 법 준수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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