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020년 공정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자유 경쟁 시장의 파수꾼 공정거래위원회가 코로나19 사태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 위기 속 조사 축소를 요구하는 경영계 입장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운 데다, 각종 계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 갈등에서 보듯 소비자들의 불만도 달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와 소비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양새이다.
공정위의 한 핵심 간부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몇주 동안 시효가 임박한 조사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현장 조사는 나가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피해를 당한 소비자나 을의 위치에 있는 사업자는 있기 때문에 공정위로선 원칙적으로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2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을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로 ‘공정위 조사 최소화(서류조사 포함)’을 제시한 데 따른 반응이다. 공정위가 경영계의 사정을 염두에 두고 현장 조사는 자제하더라도 서류 조사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이 간부의 설명이다.
코로나19로 여행·예식 등 각종 행사 취소로 불거지는 소비자 분쟁 처리에서도 공정위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0일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위약금 상담 관련 동향’ 자료를 통해 “소비자뿐 아니라 사업자, 특히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어려움도 큰 점을 고려할 때 공정위가 위약금 면제 여부 등을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으나 최근에는 소비자 입장에 좀 더 기운 쪽으로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실제 최초 입장 발표 닷새 뒤인 지난 15일엔 “위약금이 과도하다고 제기하는 주된 원인이 ‘불공정한 위약금 약관조항’이기 때문에 업계에 자율시정을 요청한 것이고 시정이 안 되면 약관법에 따라 시정조치할 예정”이라며 위약금 분쟁 해결에 공정위가 직접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비자와 기업 간 분쟁 가운데 가장 큰 이슈인 ‘대한항공 마일리지 약관 심사’도 코로나19가 새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이 복합결제 도입과 함께 마일리지 공제·적립 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는 내용의 마일리지 약관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소비자단체들은 ‘마일리지의 재화 가치를 훼손하는 불공정한 약관’이라며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미 2003년 마일리지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번 약관 심사를 통해 대한항공의 일방적인 마일리지 개편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맡은 대한항공의 경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태휘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마일리지 약관 심사는 관련이 없다면서도 “완급을 조절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며 고민을 내비쳤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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