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시험이 두번이나 연기됐어요. 토익 점수도 더 올려야 하는데 그것도 취소됐고요.”
김지민(28)씨는 올해 초 다니던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취업준비생(취준생)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옮기길 희망한 회사의 서류 전형도 통과한 터라 필기시험 준비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김씨는 1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필기시험 연기된 날짜가 한국어능력시험과 겹쳐서 (그 시험을) 취소했는데 필기시험이 또 연기되는 바람에 한국어 점수도 못 땄다. 토익이나 토스 등 어학 시험도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입사 시험뿐 아니라 취업에 꼭 필요한 각종 자격증 시험까지 잇달아 연기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주요 기업들이 채용 일정은 물론 채용 규모도 애초 계획보다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터라 취준생들의 취업문 뚫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대구에서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손아무개(27)씨는 “항공사들은 아예 채용문이 막힌 것 같다. 코로나보다 취업이 안되는 게 더 무섭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대표 업종이다. 항공사들은 대부분 기존 운항을 대폭 축소하고 직원들에게 무급휴가 사용을 권고하는 등 구조조정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취준생 조아무개(24)씨는 지난달 졸업유예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조씨는 “올해 수시채용이 늘어난다고 해서 지난달 졸업을 해버렸다. 아직 주요 기업 채용소식이 없고 진행 중이던 채용절차도 무기한으로 멈췄다”고 했다. 그는 “학교도 이용하기 어려워 내가 취준생인지 그냥 백수인지도 헷갈린다”고 했다.
실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은 잇달아 채용 일정을 연기하거나 애초 계획했던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3월11일에 채용 공고를 냈던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쪽은 <한겨레>에 “언제 공고가 나갈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상 공고 후 한달 뒤 채용시험이 치러지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삼성전자 입사는 예년보다 한두달은 더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 지난해에는 4월에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일정도 나오지 않았고, 일부 직군에 한해 치러지는 소프트웨어 역량테스트도 3월 첫째 주에 잡혔다가 무기한 미뤄졌다. 보통 4~5월에 채용 절차가 이뤄지는 엘지(LG)전자는 예년 1천명 정도를 뽑아왔지만 올해 채용 규모는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공채 대신 부문별 수시 채용으로 바꾼 현대·기아차도 지난달 말부터 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잠정 중단했다. 현대차는 채용 면접 대상자들에게 일정을 연기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현대차 쪽은 “면접 재개가 언제쯤 이뤄질지는 현재로선 확실하지 않다.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면접을 재개하고 상시채용 프로세스를 재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회사는 애초 계획한 채용 규모는 유지하기로 했다.
한화그룹도 올해부터 계열사별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으나 코로나19로 학사일정이 연기되면서 일부 계열사의 채용 일정도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 한화 쪽은 “계열사별 구체적인 채용 일정과 인원은 상황 변화를 봐가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도 애초 지난 16일 채용 공고 예정이었으나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연기했고, 롯데그룹도 다수 지원자가 몰리는 인·적성 시험과 면접 전형을 한달가량 늦춰서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20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 126곳 가운데 27.8%가 올해 상반기 채용을 축소하거나 한명도 채용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상반기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기업도 32.5%에 이르렀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조사 기간은 지난달 5~19일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직전이었다”며 “최근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대기업 채용 시장은 이번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용 규모가 큰 폭으로 수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일부 기업들은 ‘언택트’(비대면) 방식을 도입해 예정대로 채용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자료를 보면, 일부 아이티(IT) 기업은 서류 접수부터 면접까지 100% 비대면 채용을 도입했다. 라인플러스는 소프트웨어 부문 신입 공채에서 코딩 테스트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면접은 원격으로 진행한다. 이스트소프트그룹의 4개 계열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엘지전자 등 일부 대기업도 면접 전형은 온라인 방식을 택할 예정이다. 엘지전자는 경력직 지원자에 한해 1차 실무전형을 화상면접으로 진행하고 있다. 씨제이(CJ)그룹은 다음달 진행될 일부 직군 공채에서 화상면접을 도입한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도 이날부터 진행 중인 모든 채용에 화상면접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송채경화 신민정 기자, 산업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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