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감시위)가 11일 내놓은 권고안은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향후 준법의무를 위반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공표’가 핵심이다. 감시위는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엔 “(총수 일가 등)일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들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조만간 이 부회장의 사과 및 공표 등 후속 절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5일 출범해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조사를 벌인 감시위는 “그간 삼성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체로 ‘승계’와 관련이 있었다”고 본 게 이번 권고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권고안은 이 부회장의 직접 사과 등을 요구한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도 적잖다. 일단 감시위가 이 부회장에게 감시와 반성을 요구하며 짚은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노조 와해’ 등은 하나같이 이미 범죄 사실이 상당부분 드러나 그룹 핵심 임원들이 실형을 선고받는 등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가성이었다고 판단했고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중이다. 감시위가 지난 한 달간 삼성의 보고와 내부 제보 등으로 새롭게 발굴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외려 감시위는 “불법 승계 작업 등 과거 문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된 자료가 확인되면 공유를 해달라”는 검찰의 협조 요청 공문에 5주가 지난 이날까지도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더라도 ‘공허한 사과’란 평가가 나올 소지가 있다.
최근 삼성의 움직임도 권고안의 의미를 빛바래게 한다.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은 이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내놓은 이사진 후보 면면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에 연루된 이 회사의 김태한 대표이사는 연임에 나선다. 또 삼성에스디에스(SDS)·에스디아이(SDI) 두 회사가 추천한 사외이사 중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에 문제가 없다’거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사법 당국에 제출한 대학교수들이 포함돼 있다. 이해충돌 소지는 물론, ‘삼성 편을 든 데 대한 보상’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권고안 발표 이후 “충실히 검토하겠다”며 수용 의사를 밝힌 삼성의 ‘말’과 실제 움직임 간에 거리가 있는 셈이다. 감시위의 태생적 한계도 권고안의 진정성에 의문을 낳는 요소다. 감시위는 경영 퇴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건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와중에 재판부의 요구로 구성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감시위 활동 결과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 부회장이 감시위 권고에 ‘응답’하고 재판부가 ‘양형 반영’ 입장을 고수할 경우 감시위 출범때부터 불거진 ‘총수 양형 깎기용’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 소장)는 “이 부회장의 과거 잘못은 법원에서 판단해 유죄가 확정되면 그게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번 권고안엔 구체성도 없을뿐더러 감시위는 자체 조사가 진행중인 동안에도 삼성이 과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에 눈을 감으며 미래의 잘못도 막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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