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오카시오 오르테즈 미 민주당 하원의원이 그린뉴딜 결의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에드워크 마키 미 민주당 상원의원과 함께 제안한 그린뉴딜 결의안은 지난해 하반기 미 하원위원회는 통과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위원회는 통과되지 못했다. 위키커먼즈 제공.
“디트로이트를 그린뉴딜의 엔진으로 만들자” 지난해 9월 미국 디트로이트 시내를 인파로 메운 시민단체들이 내건 구호다. 미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시는 60~70년대 자동차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지역이다. 2016년 대선에선 기후위기를 전면 부인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던 대표적 ‘러스트벨트’ 지역 (제조업 사양화로 불황을 겪는 지역)이기도 하다. 불과 4년 만에 이런 도시의 한복판에 그린뉴딜 정책 입안을 요구하는 함성이 울려 퍼진 이유는 뭘까?
그린뉴딜(Green New Deal)은 기후위기 극복에서 출발해 경제•산업 체제의 대전환으로 이어지는 종합적인 개혁정책이다.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 불평등의 해소를 겨냥한다. 이런 데는 기후위기의 몸통이 온실가스가 아니라 무한생산과 무한소비를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그린뉴딜 의제가 환경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으로 지역경제를 재건하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대안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미국 민주당의 주요 대통령 후보들은 발 빠르게 그린뉴딜을 이번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과 정의당이 그린뉴딜 경제전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눈에 띄는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요 정당이 이러니 그린뉴딜이 지향하는 새로운 경제 사회 비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탓하기도 어렵다. 정부마저도 기후위기를 ‘위험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인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이미 ‘기후 악당’ 국가란 별명을 얻고 있다. 별명이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에 뒤처지면 한국의 주요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린뉴딜의 국내 실현 가능성과 이를 위한 과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8일 국토환경연구원과 기후변화행동연구원, 녹색전환연구소 주관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린뉴딜이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대한 시민정책포럼이 열렸다.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연기됐던 이 날 포럼은 온라인으로 전환돼 진행됐다.
기조발제에서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은 “한국에서 그린뉴딜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국내 사정에 맞춤한 정책안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그린뉴딜이나 지난해 12월 합의된 유럽의 ‘그린딜’은 모두 각국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라며 “최근 그린뉴딜이 정치 공약으로서 제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해외 그린뉴딜 정책을 그대로 수입해오는 건 절대 안 된다” 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정의당은 10년 내 탄소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그린뉴딜 경제 전략을 4•16 총선 공약 중 하나로 발표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그린뉴딜 경제전략을 발표하는 모습. 정의당 제공.
미국의 경우, 사회 취약계층의 협력을 기반으로 이들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기후위기 문제와 함께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그린뉴딜을 제안한다. 사회 취약계층이 주도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에 적절한 의료서비스, 적정한 주택가격 등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게 미국 그린뉴딜이 제시하는 큰 그림이다. 미국보다 구체적인 방안과 전략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는 유럽의 그린딜은 사회정치적 관점보다 기술 산업적 관점이 두드러진다. 2020년 유럽기후법, 탄소 과세 등 온실가스 감축 정책 도구를 활용해 탄소 다배출 국가 상품과 원료 수입을 규제하고, 유럽 역내 탄소 중립을 추진해 저탄소•무탄소 신산업을 진흥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김 위원은 “그린딜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그린뉴딜 움직임을 볼 때, 한국이 향후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무역제재에 봉착하는 등 직간접적인 국제 경쟁력의 위기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국내 환경에 맞는 그린뉴딜 대안을 찾고, 선제 대응체제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불어 국내 산업과 노동력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린뉴딜 관련 정책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기준에 비춰 건실한 정부 재정을 활용해 이른바 ‘좌초위기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노동자들의 직무, 직업 전환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국내 그린뉴딜의 성패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통합하고 조율하느냐의 정치력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그린뉴딜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력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그린뉴딜과 관련된 산업전환의 주요 대상인 국내 제조업 부문의 노동자들은 남성-대기업-정규직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동계급이라 할 수 있다”며 “이들을 그린뉴딜 의제의 참여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에 (그린뉴딜)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린뉴딜 정책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산업들은 석유화학, 자동차, 시멘트, 철강 등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이다. 좌초위기산업으로 일컫는 이들 산업은 총 제조업 생산액의 약 40%, 근로자의 29%를 차지할 만큼 우리나라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산업의 도태는 자연스레 지역사회 일자리뿐 아니라 경제,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린뉴딜의 주요 추동 주체로서 청년들의 역할도 강조됐다. 임재민 기후위기 청년 모임 빅웨이브 운영위원은 토론에서 “그린뉴딜 의제에서도 청년의 역할이 중요하게 거론되지만, 국내에선 아직 이미지 홍보의 역할로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며 “청년들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일자리에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충분히 교육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아직 그린뉴딜이 국내에서는 논의의 초기 이므로 제조업 노동자, 청년, 시민사회 등 사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절충하는 논의 테이블을 많이 만들자는데 동의했다. 이 소장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직접 투자를 비롯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적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린뉴딜의 필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할 때”라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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