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훌라한 비콥 공동 설립자는 “비즈니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과 주주가치만이 전부가 아니다.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8월 아마존과
애플 등 미국의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181명은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종업원에게 투자하는 것은 물론, 협력업체를 공정하게 대하고
지역주민을 존중하며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최근 미국 주요기업을 중심으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는 ‘포용적 비즈니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비콥’(B Corporation)이 있다. 2006년 설립된 미국 비영리기관 비랩(B Lab)이 이끄는 비콥은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주주 중심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며 경제적 성과와 사회·환경적 성과를 함께 추구하자는 기업혁신 운동을 이끌고 있다. 2006년 설립 후, 유니레버, 파타고니아를 비롯해 지금까지 3000여 개의 기업이 비콥 회사로 인증받았다. 미국 뉴저지
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30개가 넘는 주에서는 기업의 정관에 사회, 환경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비콥 법률을 통과시켰다. 국내에서도 차량 공유기업인 쏘카를 비롯해 오요리 아시아, 제너럴 바이오 등 사회적기업 13곳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기업 혁신 운동을 이끌고 있는 바트 훌라한 비랩 공동설립자가 ‘제2회 지속가능경영과 비콥국제컨퍼런스’에 기조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지난 13일 바트 훌라한 비랩 공동설립자를 만나 비콥의 의미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 세계적으로 비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7~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주주 중심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문제점도 지적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불평등, 환경 문제 등 심각해져 가는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에도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경영진들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부 주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직접 실천에 옮기고 있다. 비콥 운동이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70여 개국 150개의 산업 영역에서 3000여 개의 기업이 비콥 인증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고객, 직원, 지배구조, 지역사회, 환경 등 5개 분야에서 180여개의 질문에 답하고, 80점(200점 만점) 이상을 받아야만 한다. 비콥 인증을 받은 후에도 기업들은 매년 임팩트 리포트를 발간·공개해야 하고, 3년마다 재인증 심사를 거치게 하는 등 비콥 인증 기업으로서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른다.”
―이렇듯 까다로운 인증 절차에도 불구하고 참여기업들이 느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비콥은 다니고 싶은 매력적인 회사이다. 비콥은 유능한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고객들에게도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으로서 다가가고, 브랜드 충성도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임팩트 투자를 비롯해 국내외 투자를 수월하게 유치하는 데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콥 인증 기업들은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신뢰성이 검증된 글로벌 사회성과 투자 평가 시스템(GIIRS) 등급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 2016년 유럽 최초로 비콥을 법제화한 이탈리아의 경우, 비콥 회사에 투자한 투자회사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예산안을 국회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비콥 회사들의 투자 유치에 힘을 더해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4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제2회 지속가능경영과 비콥 국제 콘퍼런스’에 패널토의에서 참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파올로 디 시사 이탈리아 나티비아 공동설립자, 바트 훌라한 비랩 공동설립자, 정은상 비콥 한국위원장.
―스포츠 의류회사인 앤드원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비영리기관인 비랩을 설립했다. 기존의 경력과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는.
“앤드원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만들고자 했다.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회사로 운영했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비재무적인 요소를 고려하면서 주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9년 결국 기업을 매각했다. 앤드원의 경험을 통해 기업 정관을 비롯해 회계 시스템 등 기업을 선한 길로 안내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걸 알게 됐다. 기업에 몸담고 있진 않지만, 아직도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는 힘이 기업에 있다고 믿는다. 이들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회 운동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비콥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비콥의 앞으로의 과제와 목표가 있다면.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운동으로서의 확장성과 진정성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다. 비콥은 전 세계 모든 기업에 열려 있다. 우리의 취지에 동감하는 기업들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비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사회책임 기업으로서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지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비콥 인증 절차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비콥이 진정성을 갖고 꾸준히 확장해가려면 비콥 기업으로서의 평가와 검증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비영리 부문과의 협업이다. 비콥은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다. 이는 영리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영리, 영리 모두가 함께 해결할 과제이다. 포용적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과 비영리기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비콥이 기업과 비영리기관을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운동이 진정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