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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1조 넘게 깨진 ‘공유 비전’에 AI 장착 ‘뚝심투자의 손’

등록 2019-11-17 18:36수정 2019-11-18 09:55

소프트뱅크 손정의, 마이더스 손? 마이너스 손?

투자했던 사무실 공유 ‘위워크’
3분기 적자 150% 늘어 1조4600억
CEO 경질하고 95억달러 더 투자

투자 능력에 의구심 제기되지만
37개 회사서 20조 이익 거두고
22개 회사에선 7천억원 손실

문 대통령 만나 AI 강조했던 손
AI 무관한 ‘위워크’ 투자 이유 묻자
“오피스 사업 수익날 때 됐고
AI 장착해 부가가치 키울 것”
비전펀드 1호 이어 2호도 박차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너덜너덜합니다. 엄청난 적자에요. 석달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적자를 낸 것은 처음입니다.”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연 3분기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겸 사장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이렇게 입을 열었다.

소프트뱅크그룹의 3분기 실적은 아주 좋지 않았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7001억엔(약 7조53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작년 3분기 5264억엔(약 5조6600억원)의 흑자에서 엄청난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이런 손실은 자체 사업이 아니라, 9702억엔(10조4300억원)의 손실을 본 펀드 투자에서 비롯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비전펀드를 통해, 그리고 직접 운용하는 펀드에서 위워크(Wework)나 우버 같은 회사에 투자해왔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나 (우리가 투자한) 위워크가 도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보도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손 회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유튜브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소프트뱅크그룹에 대규모 투자손실을 안긴 곳은 세계 최대의 오피스 공유업체 위워크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위워크가 3분기에 12억5천만달러(약 1조46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13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억9700만달러)에 견줘 손실이 2.5배로 늘어난 것이다.

위워크를 운영하는 위컴퍼니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올해 초만 해도 기업가치가 470억달러(54조8300억원)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손 회장은 지난 5일 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위컴퍼니의 기업가치 평가액을 ‘78억달러로 추산한다’고 발표했다. 1년이 채 안 되어 5분의 1로 쪼그라들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위워크 등 투자한 기업의 기업가치 감소로 인한 거액의 평가손실을 3분기 장부에 반영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이 직접 투자한 것에서 5천억엔, 비전펀드를 통해 투자한 부분에서 4천억엔, 합해서 9천억엔(약 9조68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손실을 반영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위워크는 지난 8월 상장을 위한 정보공개를 한 뒤, 투자가들과 언론의 혹평을 받았다. 위워크는 2018년 매출이 18억달러였는데, 적자 규모가 매출액보다 많은 19억달러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위워크가 1시간에 3억원씩 적자를 냈다”고 지난 4월 보도했다. 결국 위워크는 상장에 실패했다.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겨 소프트뱅크가 이례적으로 95억달러(약 11조2천억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소프트뱅크의 지분은 80% 가까이로 높아졌다. 창업자인 애덤 뉴먼은 최고경영자 겸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손 회장은 “창업자 뉴먼을 과대평가했다”고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손 회장은 8월까지만 해도 위워크에 대해 ‘높은 성장률이 앞으로 5년, 10년 계속될 것이다’라고 극구 칭찬했으나, 단기간에 태도를 바꾼 셈이다.

위워크 투자 실패는 손정의 회장이 주도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참가한 비전펀드로도 불씨가 옮겨붙었다. 비전펀드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해, 상장을 통해 투자수익을 노린다.

비전펀드는 지난 2017년에 100조원이 넘는 규모로 출범했다. 5년에 걸쳐 투자를 할 계획이었으나 2년 만에 펀드 자금을 다 투자에 쏟아부었다. 그동안 88개 회사에 투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주 1조원씩 투자한 셈”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비전펀드가 투자한 뒤 상장한 기업만 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미국의 게놈 해석 회사 가던트헬스와 바이오 의료업체 10X게노믹스 등 두 곳은 주가가 올랐지만, 우버(차량 공유)와 슬랙(비즈니스대화 앱) 등 5곳은 주가가 큰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5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한 우버는 3분기에 11억달러(1조2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우버의 주가는 상장 첫날 공모가(45달러)에 견줘 7.62% 하락했다. 11월14일 종가는 25.99달러로 공모가에 견줘 42%나 떨어져 있다.

엄청난 속도로 기업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식의 투자에 한계가 온 것은 아닌가? 공유경제를 표방한 사업의 성장에 한계가 온 것 아닌가? 위워크 투자 실패,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의 좋지 않은 실적은 이런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 비전펀드가 투자한 배차 앱 회사들도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거나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거액을 투자한 한국의 물류·유통업체 쿠팡도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비전펀드가 엄청난 속도로 투자를 하는 동안 기업가치가 부풀려졌다가 상장 뒤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상장 기업들의 주가 하락만 보고 비전펀드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만을 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비전펀드가 투자해 아직 상장하지 않은 유니콘 가운데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투자가 많기 때문이다. 인도 호텔 체인 오요에서 100배의 수익이 예상되는 것을 비롯해, 중국 배차중개업체 디디추싱,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의 바이트댄스 등은 기업규모가 큰 데다 투자 수익률도 3배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전펀드는 9월 말까지 37개 회사에서 1조8천억엔(약 19조원) 가까운 이익을 거뒀고, 22개 회사에서 6천억엔(약 6조4천억원) 가량 손실을 보았다. 손 회장은 “투자의 세계에선 10대 0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한때 인터넷 전도사였다. 야후 투자로 돈을 번 것이 성공의 시작이었고, 중국의 알리바바에도 거액을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전도사’라고 불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를 외쳤던 손 회장은 지난 7월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인터넷의 여명기에도 지금처럼 회의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지금 주식 시가총액 상위 10위 안에 인터넷 기업들이 들어 있다”며 “인공지능에 대한 내 전망은 이번 소동으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워크가 인공지능 관련 기업도 아니고, 인터넷 기업도 아닌 그저 부동산 회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지금까지는 기초편이었고, 일단 적자에 브레이크를 건 뒤 응용편에서 인공지능을 장착해 부가가치를 키우는 모델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워크의 경우 전체의 40%에 이르는 셰어오피스 데스크가 문을 연 지 13개월이 지났고, 13개월이 지나면 이익을 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 2호는 비전펀드 1호와 거의 같은 규모로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워크나 우버의 실적 문제를 들어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투자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계획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근거도 많다고 강조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먼저 독자적으로 비전펀드 2호(SVF2)의 투자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우버, 위워크가 안긴 의구심을 딛고 누가 얼마나 투자에 동참하는지가 관심거리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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