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는 한국항공 ‘장비차’ 천장에 물받이용 페트병이 달려 있다. 비가 오거나 에어컨이 가동되면 차량 내부에 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용호 의원실 제공
인천공항 활주로 안에서 일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을 실어나르는 차량이 심하게 낡은 상태에서 운행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규정상 정기점검을 해야 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인천공항공사)가 이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국적 항공사 자회사를 ‘검사자’로 지정한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셀프 점검’ 탓에 안전 문제가 시정되기는커녕 그동안 은폐된 셈이다.
<한겨레>는 26일 이용호 의원실(무소속)을 통해 항공기 청소 등 지상조업 용역업체 직원들이 작업장으로 이동할 때 탑승하는 차량(일명 장비차) 사진을 입수했다. 외양은 일반 승객들이 항공기 탑승 때 이용하는 셔틀버스와 같지만 내부는 전혀 달랐다. 차량 천장에는 비가 오거나 에어컨이 가동될 때 떨어지는 물을 받아내는 비닐 주머니와 잘린 페트병이 달려 있다. 운전석 계기판에는 “오일 누수가 심합니다. 오일 체크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메모지가 붙었다.
대한항공 항공기를 청소하는 ㅇ용역업체 직원들이 이용하는 장비차는 모두 4대로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한국공항이 모두 보유하고 있다. 용역업체 노조가 지난해 장비차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공항은 4대 중 1대를 노후가 덜한 차량으로 교체했지만 나머지 3대의 안전 상태는 그대로다. 도로가 보일 정도로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던 차량은 옅은 청색 테이프로 구멍만 가린 채 여전히 운행되고 있다. 지난 6일 이용호 의원실 보좌진이 현장조사를 위해 방문한 인천공항의 한국공항 정비고에는 철심이 드러날 정도로 마모된 타이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장비차에는 기내 소모품과 노동자들이 한데 엉켜서 이동한다. 이용호 의원실 제공
차량에 함께 실리는 화물도 위험하다. 장비차에는 청소용품, 기내 소모품이 먼저 자리를 잡고 노동자들은 남는 공간에 몸을 싣는다. 지난 5월엔 장비차 선반 위에 실린 10㎏ 상자가 떨어지는 바람에 60대 여성 노동자가 머리를 크게 다쳐 한 달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용역업체 소속 한 노동자는 “화물과 함께 짐짝처럼 실려 다니는 건 이 회사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용역업체 노동자가 한국공항 장비차 안에서 기내 소모품 더미에 기대어 앉은 채로 이동하고 있다. 이용호 의원실 제공
‘안전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용역업체 노조의 요구에도 변화가 없었던 건, 안전점검자가 이 차량의 소유주인 한국공항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 홍보실은 “공항운영규정에 따라 공항운영자가 승인한 안전검사장에서 매년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현재 인천공항 내 검사장은 한국공항, 아시아나에어포트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공사가 직접 점검하려면 별도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규모가 되는 국적 항공사 자회사를 검사자로 지정한 것이며 개항 이래 이렇게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가 전문성을 이유로 한국공항에 검사 권한을 넘김에 따라 한국공항이 자사의 지상조업 차량을 ‘셀프 점검’해온 셈이다.
한국항공 장비차 바닥에 구멍이 났으나 그 부분에 테이프가 붙여진 채 계속 운행되고 있다. 이용호 의원실 제공
이용호 의원은 “지상조업 노동자들의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국토부가 조업 차량 관리실태조사를 포함해 실효적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며 “또 차량 관리 주체가 안전검사도 겸하는 이른바 ‘셀프 점검’이 불가하도록 즉각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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