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기술은 재난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스마트국토엑스포'에서 시민이 3차원 공간정보 홀로그램 컨트롤 타워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전남 장성군에서는 ‘IoT@엄니어디가?’라는 재미있는 명칭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었다. 행정안전부 지원을 받아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단’을 조직해 노인·치매 환자의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사물인터넷(IoT)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비콘(Beacon)을 통해 노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심장박동을 체크하며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이장과 마을 조직, 타지 자녀들에게 자동으로 연락되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주민들이 전문기관과 함께 디지털기술을 통해 고령자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 한 새로운 시도이다. 이 시스템은 시범마을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디지털기술과 사회혁신이 함께하는 ‘디지털 사회혁신’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민들의 정책 결정 과정에의 참여 촉진, 맞춤형 고령자 돌봄, 친환경 푸드 시스템 형성, 시민 미세먼지 측정 시스템 구축이 모색되고 있다. 생활 기술인 디지털기술을 활용하고 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디지털기술과 사회혁신이 결합하는 이런 접근은 디지털기술이 좀 더 사회를 통합적이고 포용적이며 환경친화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이해당사자와 시민들이 기술공급자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디지털기술이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게 한다. 여기에는 디지털기술의 진화 궤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좀 더 포용적·사회 친화적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관점이 깔렸다.
이것이 디지털 사회혁신론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이다. 사회·복지영역의 문제를 디지털기술을 통해서 해결하는 활동을 넘어 디지털 혁신과 사회·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에서 '가치적 전환(normative turn)'을 주장하는 이런 관점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그동안의 혁신정책을 반성하면서 등장했다. 유럽은 눈부신 과학기술발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고령화 같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음을 성찰하면서 ‘사회에 책임지는 연구와 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을 강조하고 있다. 많고 빠른 혁신보다 사회통합과 생태계 보호에 기여하는 ‘좋은 혁신’이 중요하며 혁신의 ‘방향성’이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임무 지향적 연구와 혁신 (Mission-oriented innovation Research and Innovation)’을 주장하고 있다. 이 논의들은 이런 접근이 사회의 핵심적 니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수요 지향적이며 따라서 수익 확보와 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프레임은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동안 논의된 디지털 혁신론의 프레임은 산업발전에 초점을 두다 보니 기술의 활용과 확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측면을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 게다가 추격형 전략을 취하다 보니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기술혁신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디지털 기술혁신과 그로부터 전개되는 신산업의 발전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사회는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기술결정론’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전통적인 틀에서 볼 때 디지털 혁신에 따른 실업문제, 플랫폼 노동의 문제, 온디맨드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은 신기술에 적응할 것이냐 도태할 것이냐는 문제로 정리된다. 제3의 길은 없다. 그리고 기술의 관철과정에서 불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사후적으로 복지나 다른 차원의 정책을 통해 보상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디지털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카카오나 타다의 온디맨드 교통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은 이런 구도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혁신은 이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는 이 관점에 따르면 기술이 진화할 수 있는 궤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궤적 중에서도 기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사회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기술적·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길이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궤적인지 사전에 알 수 없고 과거처럼 전문가나 행정가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사회혁신에서는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을 수행한다. 사용자와 이해관계자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참여형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현장에서 시민과 이해당사자, 기업, 전문기관, 지자체가 참여하여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리빙랩(living lab)’ 방식을 활용한다.
유럽연합에서 추진하는 Share-North(Shared Mobility Solutions for a Liveable and Low-Carbon North Sea Region) 프로젝트는 그런 접근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북해지역 도시들이 지속가능한 교통시스템 구현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리빙랩 방식으로 수행하는 승차공유 실험이다. 여기에는 지자체와 연구기관, 차량공유 서비스 공급자, 시민사회 단체, 택시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교통시스템의 미래, 자동차·자전거 공유방식, 부동산 문제, 장애인 이동, 사회통합, 농촌 이동문제, 이동산업 발전까지를 전망에 넣으면서 도시별로 실험하고 있다. 시민의 관점, 에너지 전환의 관점, 환경보호의 관점, 택시산업의 관점, 공유서비스 기업의 관점이 섞이면서 지속가능한 교통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온디맨드 교통서비스의 경우도 지속가능한 교통시스템 구현이라는 전망 하에 에너지·환경·사회통합을 고려한 이런 실험을 했으면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 사회혁신은 아직 우리의 담론에서 중요 의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디지털 혁신에 대한 비즈니스 지향성이 너무나 강해 공공성·사회적 가치 차원에서 디지털 혁신에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디지털 사회혁신을 엔지니어의 사회봉사나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혁신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각과 일하는 방식을 탐색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규모도 작고 주변부 영역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과 혁신활동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한다. 이것이 정부,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가 디지털 사회혁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프레임 전환 없이는 사회문제 해결도 쉽지 않고 신산업 창출도 어렵기 때문이다. 시도해보면 기대한 것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