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점심을 먹으러 몰려간 자리. 누군가 차량 호출 서비스인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을 화제에 올렸다. “승차공유”, “혁신의 비용부담” 등 몇 마디 해야 할 때가 있지만 딱히 아는 게 없다면? ‘밀레니얼 세대’ 이거나 ‘Z세대’라 불리는 20∼30대. 방탄소년단(BTS)의 웸블리 공연이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소식이라면 모든 뉴스를 꿰고 있지만 딱딱한 뉴스는 안 보는 이들이라고요? 이들이라고 정치·경제·국제 뉴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누구보다 체감하는 그들에게 뉴스는 결코 외면하고 말 허접한 것은 아니다.
이럴 때 답을 주는 뉴스 매체가 있다. ‘뉴닉’(NEW NEEK)이다. 월·수·금요일 아침에 전자우편함으로 ‘배달’되는 뉴닉은 그날 점심 자리의 대화가 됨직한 뉴스 3가지를 제공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늘 보던 방식이 아니라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쉽고 부드럽게 전달한다. 정치권에서 ‘패스트트랙’이 이슈가 됐을 경우 “패스트트랙이 뭔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하는 식으로 스토리라인을 풀어간다.
뉴스가 ‘힙’해지니 입소문만으로 구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지난해 12월 친구, 친구의 친구 등 1천명에게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해 6개월여 만에 4만명으로 구독자가 늘었다. 특히 전자우편을 열어보는 비율(개봉률)이 50% 이상이라는 점은 이 뉴스 서비스가 짧은 기간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단체로 보내는 뉴스레터의 개봉률은 한 자릿수가 대부분이고 많아야 10% 정도이다.
뉴닉의 창업자는 언론사 경험이 거의 없는 20대 김소연·빈다은 씨다. 김소연 대표가 2017년 잠시 미국 워싱턴에서 인턴 할 때 ‘스킴’(theSkimm)이란 뉴스레터 서비스를 구독해 보고 “이거다”란 확신이 들어 대학 동아리 친구인 빈다 은 씨와 의기투합했다. 미국에서 스킴은 7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두 창업자의 초기 성공은 기존 언론의 문법을 전혀 몰라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20대로서 뉴스를 볼 때 갑갑했던 점들을 해결하려 하다 보니 독자가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신문, 방송 등 전통미디어의 혁신이 주춤한 사이 다양한 독자의 요구에 맞춘 신생 매체의 성공사례가 나오고 있다. 20대 여성의 경제적 관심에 초점을 맞춘 ‘어피티’(UPPITY), 지식콘텐츠 유료화에 성공한 ‘퍼블리’(PUBLY), 월1만원에 매일 수필 한편씩을 보내주는 <일간 이슬아>, 맥주, 커피 등 음료수에만 특화된 버티컬 미디어 <마시즘>(masism) 등이 그런 예이다. 뉴스 생태계는 몇 개의 큰 나무 (신문, 방송)가 있던 동산에서 여러 꽃과 작고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정원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문법과 방식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뉴닉도 그렇게 피어난 꽃 중의 하나이다.
뉴닉은 5월3일부터 한 달간 숨을 돌리는 기간을 갖고 이달 3일 뉴스 서비스를 재개했다. 한 달간 누리집 단장이나 투자 유치로 두 창업자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김소연, 빈다은 두 창업자와의 인터뷰는 5월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있었고, 김소연 대표와는 같은 달 20일 다시 만나 추가로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답변자의 의견이 일치해 둘의 발언을 구분하지 않았다.
뉴닉 창업자인 김소연 대표(왼쪽)와 빈다은 최고운영책임자. 뉴닉 제공
20~30대에게 뉴스란?
신문과 방송에 20∼30대 독자는 ‘숙제’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반드시 잡아야 하지만, 뉴스를 잘 읽지 않는 세대다. 신문은 아예 읽는 습관이 형성돼 있지 않고, 방송 뉴스의 본방 사수도 하지 않는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연예·오락이나 스포츠 등 가벼운 뉴스 위주로 읽는 세대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하지만 김소연, 빈다은 창업자는 “요즘 젊은이들은 뉴스도 보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화의 분위기 방식이 있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적 삶과 공적 삶이 있기에 뉴스에 대한 욕구는 다들 갖고 있다고 봐요. 밀레니얼 세대라고 다르지 않은데, 다만 이 세대는 뉴스를 콘텐츠로 바라보는 세대라는 차이가 있어요. 즉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펴고 ‘뉴스를 봐야지’하는 의무감에서 보는 세대가 아니라 내가 효용을 느껴야 보는 세대입니다. 욕망에 솔직해서 눈치 안 보고 ‘이거 재미없다’, ‘이 뉴스 친절하다 ’같은 얘기를 가감 없이 하는 세대입니다”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뉴스는 어떤 것이었나?
“처음 시작할 때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200명을 설문 조사했는데, 뉴스를 보고 싶어도 장벽 때문에 보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어요. 이유가 첫째, 시간이 없다. 둘째, 재미가 없다. 셋째, 공감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뉴스는 그때그때 터지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걸 내가 이해하려면 전체 얘기를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관련 기사를 많이 읽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가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였어요. 다음으로는 뉴스가 딱딱하고 어려워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한자어가 많이 섞인 것도 장벽이죠. 단골 미용실 언니 역시 ‘나도 그렇다’고 하는데, 미용실 언니와 제 대학 친구는 여건이 많이 다르거든요. 근데 이들 모두 여전히 뉴스를 보고 싶지만 장벽 때문에 못 본다는 점에서는 같았어요.”
-뉴닉은 어떤 전략으로 이들을 파고들었나?
“저희 둘 역시 20대 뉴스 소비자로서 함께 느끼고 있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걸 해결하는 뉴스콘텐츠를 만들자’는 게 저희의 비즈니스 사명이었어요. 쉽고 재미있는 뉴스콘텐츠가 되자는 것이었죠. 저희는 뉴스가 완전 블루오션이자 동시에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뉴스에 관심을 갖게 돼 있어요. 이런 콘텐츠를 20대~30대의 기호에 맞게 제공하는 곳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뉴닉이 나왔을 때 저희가 상상했던 것보다 반응하는 집단이 다양하고 광범위했고, 빠르게 성장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뉴닉이 스포츠나 연예처럼 감각적인 연성뉴스로 다가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브렉시트’ 같은 국제정치나 경제 등 경성뉴스를 다룰 때 독자의 호응이 더 컸다고 한다. 핵심은 어려운 얘기를 어떻게 쉽고 친절하게 전달하느냐에 있었다.
“한번은 중국 연예인인 판빙빙(탈세 논란으로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중국 톱스타)을 다룬 적이 있었어요. 저희는 중국의 검열과 감시 시스템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독자들에게 의외로 혼났어요. 연예나 아이돌 소식은 내가 알아서 본다. 뉴닉에 들어올 때는 어려운 것을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싶어서 오는 것이지 가십거리를 소비하고 싶은 것은 아니란 것이죠. 뉴닉이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에요. 쉽게 전달하는 것과 얕은 것은 다른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는데, 한입에 떠먹여 주니까 독자가 어떤 쾌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쉽게 쓰기 위해 떠들썩 하게 수다 떨며 기사 작성
-쉽게 쓰는 게 사실 더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기사 작성을 하나?
“이건 일급비밀인데요.(웃음). 저희가 워낙 친해서 기사 작성하면서 서로 얘기를 많이 한 게 도움이 됐어요. 대화하며 기사를 쓰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글이 만들어져요. ‘패스트트랙’이란 단어가 나오면 바로 ‘패트스트랙이 뭐야?’가 나오잖아요. 그러다 대화의 흥미가 떨어지면 ‘나 재미없어’하고 다른 질문을 생각해 보죠. 이렇게 하니까 말로 알려주는 것처럼 편하게 독자가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을 구조화, 시스템화할 수 있는지가 저의 관심사예요.”
-뉴스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있는 뉴스를 큐레이션을 하는데 지속가능한가? 팩트체크의 어려움도 있을 텐데.
“어젠다를 만드는 신문, 방송과 저희의 역할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떤 어젠다가 있는데 여건상 모르는 것을 저희가 빨리 쫓아가서 2차로 풀어드리는 것이잖아요. 신문, 방송과의 긴장 관계나 마찰은 없는지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저희는 시너지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뉴닉이 없었으면, 기성 언론의 디지털 기사를 소비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저희 하이퍼링크를 통해 뉴스를 보잖아요. 팩트체크는 처음엔 필요성을 몰랐는데, 곧바로 독자의 지적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미흡한 부분을 사전에 봐줄 법률가 등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미국이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한 내용을 다룬 6월 3일 자 뉴닉 뉴스레터
뉴닉의 특징 중 하나는 고슴도치를 형상화한 ‘고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독자와 소통하는 것. 전자우편 뉴스레터가 편지 형식이다 보니 ‘보내는 이’에 해당하는 화자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뉴닉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는 상징이 됐다. 매 뉴스레터마다 옷을 갈아입고 표정도 달라지는 고슴이를 두고 구독자들 사이에 “고슴이 덕질한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고슴이는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식당도 들어가는 순간 지저분하거나 하면 일단 먹기가 싫잖아요. 고슴이는 깨끗하게 잘 놓인 수저와 같은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어요. 밀레니얼 세대는 경험을 중시한다고 생각해요. 유명 커피숍도 문을 열자마자 아 이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서 가지 단순히 커피가 맛있어서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뉴닉도 메일함에 들어와 클릭하는 순간부터 ‘아 뉴닉스럽다’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장치 중 하나가 고슴이죠.”
친근하고 대화하는 매체인 이메일의 장점 발견
뉴닉의 기여 중 하나는 전자우편의 장점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동안 전자우편은 낮은 개봉률 때문에 뉴스 매체로서의 효용이 잊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전자우편 뉴스레터는 해외에서 먼저 부활했다. 더스킴(theSkimm), 더허슬(the Hustle), 쿼츠(Quartz) 등의 뉴미디어가 전자우편 뉴스레터를 잘 활용하고 있고, <뉴욕타임스>도 50종이 넘는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저희는 전자우편이 참 장점이 많다고 봐요. 전통 언론사가 뉴스를 내보내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은 사실 그들의 알고리즘에 (뉴스 노출이) 맡겨져 있어서, 독자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때 콘텐츠를 만나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 의도치 않은 만남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외부에 맡기기 싫은 것이죠. 우리는 독자와 1대일로 대화하고 싶은데 그걸 가장 쉽게 이뤄낼 수 있는 게 전자우편이었어요. 아울러 저희가 초기에 티켓으로 삼은 독자가 사무실 직장인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미 아침에 가서 전자우편부터 확인하거든요. 그들의 ‘루틴’(반복되는 일상)에 끼어드는 게 전자우편이니 너무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신문 읽듯이. 아울러 저희는 뉴스가 어떤 감정적인 효용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뉴스를 받아들이는 것은 약간 공부하는 태도로 임해야 하고 뭔가 마음이 편치 않은데, 전자우편은 뭔가 친구한테 보내는 편지 같은 감성이 있어요. 전자우편 같은 채널이 참 힙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수익모델이다. 일단 성공적으로 출범한 이 매체가 지속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뉴닉은 2018년 4월 미디어전문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로부터 4천만원의 창업투자를 받았다. 1월에 후원금 모집 캠페인을 했고, 2천여명의 독자에게서 평균 1만3천원 정도를 기부받았다. 현재는 추가 투자유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 유료화는 당장의 선택 리스트에는 없다고 한다.
“우선 8월까지 10만까지 구독자를 확장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 서비스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를 판단해야 다음 확장 계획이 세워지는데 성급하게 유료화하면 그걸 충분히 알기 어려울 것 같아요. 후원이나 콘텐츠형 광고같이 다양한 형식을 실험해 볼 생각입니다. 취향이 비슷해서 모인 사람일 때 그다음에 그들의 욕구에 맞는 다른 서비스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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