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망 이후 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조원태·현아·현민씨 3남매가 갈등을 빚는 듯한 징후가 나타났다. 한진그룹이 공정거래법상 차기 동일인(총수)을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 이견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집단 및 동일인 지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지난달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했지만 내부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새여서 ‘남매의 난’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공정위는 8일 한진그룹이 차기 동일인 변경신청서를 이날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면서 애초 10일로 예정했던 2019년도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지정 일자를 15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한진이 기존 동일인인 조양호 회장의 작고 뒤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 하고 있다고 소명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지난달 24일 고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회장이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되고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내부 이견으로 차기 동일인 지정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어 누나와 여동생인 조현아·현민씨와의 갈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3남매와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상속 문제를 아직 정리하지 못한 데 따라 동일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이어서다. 한진그룹이 공정위에 제출해야 할 자료에는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7.84%를 어떻게 상속할 것인지가 담겨야 한다.
한진칼 2대 주주인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의 향후 움직임에도 시선이 쏠린다. 케이씨지아이의 한진칼 지분은 14.84%로, 고 조 회장의 지분과 3%포인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조원태 회장은 2.34%, 조현아 전 부사장은 2.31%, 조현민 전 전무는 2.30%를 보유하고 있다. 3남매 사이에 지분 상속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케이씨지아이의 한진그룹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으로 고 조양호 전 회장이 ‘형제의 난’을 겪었던 일도 입길에 오른다. 2002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이 별세한 뒤 장남 조양호 전 회장과 차남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3남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유산 배분을 놓고 극심한 소송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조양호 회장이 남긴 “가족들이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유언이 한진가 2세 ‘형제의 난’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통상 동일인은 기업집단 범위 전체를 포괄하는 인물로, 기업집단에서 제시한 인물의 직·간접 지분율, 경영활동 등에 있어 직간접 지배력 행사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위가 판단한다. 공정위는 한진에 동일인 지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독려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직권으로 동일인을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 쪽은 “공정위에 관련 서류를 내지 못했다는 것 외에는 현재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신민정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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