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예수대 사회복지학과 배진희 교수
“잘 사는 복지국가는 우리가 많이 들어 알잖아요? 쿠바를 통해 가난한 복지국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배진희 전주 예수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신기한 복지국가’ 쿠바와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최근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시대의 창)를 펴냈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역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쿠바와 인연을 맺은 건 2016년. 처음부터 쿠바 생활을 꿈꾼 건 아니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터라 그 역시 남들처럼 북유럽이 궁금했다. 하지만 답사 겸 떠난 짧은 스웨덴 연수에서는 따분함만 느끼고 돌아왔다. 단 한 번 주어진 안식년을 특별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저는 지방대 출신에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국박(국내 박사) 교수예요. 저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우연히 쿠바에 대한 책을 만난 거예요.”
2016년 안식년 스웨덴 답사 ‘따분’
무작정 갔던 아바나에서 1년 체류
“긍정적 에너지 찾아 조사·인터뷰”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 펴내 ‘교육·의료·안전’ 기본 복지 충실
“주민 협의체 통해 경험 실천하고파”
무작정 쿠바로 떠난 그는 꼬박 한 해를 쿠바에서 보냈다. 처음 맞닥뜨린 쿠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름다운 자연보다도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눈길을 붙들었다. 온통 각박한 한국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쿠바에선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회복지학자로서 그는 쿠바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파고 들고 싶어졌다. 남은 시간을 오롯이 현장 조사와 인터뷰에 쏟아부었다.
“기본적으로 쿠바 사람들은 서로 돕는 문화를 가졌어요. 그 이면엔 가난하지만 훌륭한 복지제도가 숨어 있어요.” 가난한 복지제도라니? “우리는 으레 쿠바가 가진 것 없고 못 사는 나라라고 여기잖아요. 하지만 그곳에선 지역 네트워크가 스스로 잘 작동하도록 짜여있어요. 무상교육과 기본 의료보장, 선진적인 안전 시스템이 이들의 삶을 뒷받침하죠.”
쿠바는 전 국민이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받는 나라로, 국내총생산(GDP)의 12.8%에 해당하는 예산을 교육에 투자한다. 5%를 밑도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동안 익힌 재능과 기술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간을 거친다. 마치 ‘인턴십’처럼 각자 전공을 살려 지역의 회계 사무소, 방송사, 스포츠센터 등에서 일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배운 것을 나누기도 하는 식이다.
쿠바 복지제도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기본’이다. 사후 대책이 아니라 사전 예방에 방점이 찍혔다는 뜻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2007)에 소개될만큼 선진적인 쿠바의 의료체계가 대표적이다. “쿠바에는 ‘패밀리 닥터’가 있어요. 의사 한 명에 마을 주민 1천여 명 정도가 배정돼, 의사가 직접 돌보는 제도에요. 노인·장애인·임산부 등 돌봄이 가장 필요한 환자들이 우선이에요. 주기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죠.”
기본에 충실한 쿠바 사회의 진가는 재난 사고 대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까지 쿠바를 강타한 허리케인은 모두 109개. 대부분 대형 허리케인이었다. 2001년 대형 허리케인이 북중미 대륙을 덮쳤을 때 미국에서 9천명 넘게 사망한 것과는 달리 쿠바에선 단 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만나 본 쿠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재해방지 대책이 잘 갖춰진 덕이라고 말했다. “우선 비상연락망이 잘 되어 있어요. 책임자들은 대피소의 음식과 약 등 필수품을 철저히 관리하고, 주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계속 상황을 접할 수 있죠.”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가지 의문이 머릿 속을 맴돈다. 가난한 나라의 ‘고복지’는 과연 지속가능할까? “물론 재정이 항상 문제가 되긴 하죠. 미국의 경제봉쇄로 어려움도 겪었고요. 그럼에도 쿠바의 복지제도는 지속될 거라고 봅니다.” 쿠바의 복지 재원은 대부분 관광 수입과 의료 수출이다. 쿠바를 찾는 외국인은 누구나 현지인보다 24배 비싼 환율을 적용받는다. 2015년 기준 쿠바의 의료 서비스 수출액은 82억달러로 상품 수출액(48억달러)의 1.7배다.
최근 들어 쿠바는 자영업을 허용하고 국외 자본을 들여오는 등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해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애쓰고 있다. 그는 기본에 충실한 쿠바 복지제도의 뼈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항상 북유럽의 선진적인 복지정책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면서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만 복지를 논의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기본’이죠. 쿠바에서 배울 점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가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한 건 거의 3년 전이다. 국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3년 전엔 ‘먹히지 않던’ 이야기가 왜 지금 관심을 끌까? “최근 티브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조명한 쿠바 사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요.” 우리 사회가 쿠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젖어드는 이유도 ‘잃어버린, 꼭 되찾아야할’ 기본에 대한 갈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쿠바 생활 이후 그에겐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최근 제가 사는 지역의 주민센터 협의체 위원직을 제안받았어요. 쿠바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제 주변에서부터 먼저 기본을 가꿔보고 싶어요”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hyebin@hani.co.kr
지난 4월26일 인터뷰중인 전주 예수대 사회복지학과 배진희 교수. 사진 서혜빈 연구원
무작정 갔던 아바나에서 1년 체류
“긍정적 에너지 찾아 조사·인터뷰”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 펴내 ‘교육·의료·안전’ 기본 복지 충실
“주민 협의체 통해 경험 실천하고파”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는 "배우지 못하면 침묵하고 억압을 받는다. 대중이 교육을 통해 의식화될 때 불평등을 타파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며 쿠바 교육의 근간을 이뤘다. 이것이 쿠바가 전국민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힘이다. 사진 배진희 교수
쿠바는 1923년 세계 최초로 천연두를 근절하고, 1950년 소아마비 접종을 제도화했다. 사후대책보다 예방에 집중하는 의료 선진국이다. 지역마다 1차 진료를 책임지는 '패밀리 닥터'가 주기적으로 주민들의 집에 방문해 생활 습관과 주거 환경까지 점검하고 조언한다. 사진 배진희 교수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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