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차이
총리·대통령 만나며 ‘광폭 행보’
대기업 투자에 기대는 쪽으로
청와대가 방향 바꾼 시점 맞물려
구체적 경영 성과 아직…
메모리 실적 추락·갤럭시폴드 연기
업계선 시스템반도체 투자도
‘피할 수 없는 선택지’ 평가
과거보다 불확실한 삼성
두달쯤 남은 대법원 선고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까지
총수 공백 사태 발생할 수도
총리·대통령 만나며 ‘광폭 행보’
대기업 투자에 기대는 쪽으로
청와대가 방향 바꾼 시점 맞물려
구체적 경영 성과 아직…
메모리 실적 추락·갤럭시폴드 연기
업계선 시스템반도체 투자도
‘피할 수 없는 선택지’ 평가
과거보다 불확실한 삼성
두달쯤 남은 대법원 선고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까지
총수 공백 사태 발생할 수도
“금융위원장님이 꼭 말씀드리라고 했는데요. 이거 들어가는 돈이 인천공항 3개 짓는 비용입니다. 이 건물 하나 짓는 데….”
지난달 30일 오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극자외선(EUV)동 건설 현장.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설비를 설명하며 “20조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말할 때였다. 뒤쪽에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인천공항 3개 비용’을 얘기했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지난해 2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대외 행보에 나선 이 부회장의 모습 중 가장 편안해 보였다. “이 부회장이 여유를 완전히 찾은 것 같다”는 평가가 재계에서 쏟아졌다.
지난 1일로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총수’로 공인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대기업집단 동일인을 이건희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이 부회장의 지난 1년 행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 및 여권과의 접촉을 늘린 것이다. 특히 지난 1월부터 본격화했다. 1월 한달 동안만 이낙연 국무총리(10일·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문재인 대통령(15일·청와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30일·삼성전자 화성사업장)를 잇따라 만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의 경직된 표정과 불안한 모습은 이 부회장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고 승계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조급한 기색이 안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처럼 정부 행사 ‘단골손님’이 된 것을 비롯해 이 부회장은 1년 사이 국내외에서 공개된 일정에 10번 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10대 그룹 총수들에 비해 적지 않은 횟수다.
이 부회장의 ‘여유’는 국내 경기가 본격 둔화 양상을 보이면서 청와대와 정부가 대기업 투자 확대에 기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시점과 맞물린다. 이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 계획’으로 이에 호응하고 있다. 지난해 8월8일 삼성그룹은 “3년간 180조원 투자”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지난해 7월9일 문 대통령이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참여한 지 한달 뒤였다. 이번 시스템반도체 투자 계획은 문 대통령의 삼성전자 국내 공장 첫 방문을 엿새 앞두고 발표됐다.
이 부회장의 행보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차이가 있다. 탈세·배임 등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9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그해 12월31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특별사면’하고 나서야 경영에 복귀했다. 이듬해 5월 이 회장은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배터리 등 ‘5대 신수종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이 부회장은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미 두 차례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이른’ 정상화 행보는 정치권의 적극적인 호명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경영 혁신은 전보다 뒤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이 나서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체감 효과는 없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 유럽 등 국외 출장을 늘리며 존재감을 높이려 했지만 구체적 경영 성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지난달 시스템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겠다며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두고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급락 속에 ‘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회장이 2010년 복귀하며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때마다 전면 쇄신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뒀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삼성은 과거보다 훨씬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에서 10분기 만에 최악의 실적을 나타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편중이 고스란히 직격탄으로 돌아왔다. 스마트폰의 새 장을 열겠다며 내놓은 ‘갤럭시폴드’는 기기 결함 논란 끝에 지난달 23일 미국 출시가 연기된 상태다. ‘퍼스트 무버’의 의욕이 앞선 가운데 실책을 범한 것이라는 데 업계는 공감하고 있다. 6월께로 예상되는 대법원 선고와 한창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는 당장 눈앞의 난제다. 다시 ‘총수 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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