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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장 대신 행복을!”…‘행복의 경제학’ 어떻게 봐야 할까

등록 2019-03-27 17:41수정 2019-03-27 19:24

[더 나은 사회]
금융위기 계기로 ‘행복 담론’ 확산 추세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등 국내 움직임도
행복영향평가 도입과 행복세 주장 펼쳐
중장기 복지국가 전략으로 탈바꿈해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총행복과 행복세’를 주제로 열린 세계 행복의 날 기념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총행복과 행복세’를 주제로 열린 세계 행복의 날 기념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5.895점.

‘2019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공개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행복도(10점 만점 기준)다. 평균 행복도 순위로는 조사 대상 156개 나라 가운데 54위. 지난해(57위·5.795점)보다는 세 계단 올랐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만을 따로 추려보면 여전히 최하위권을 맴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2012년부터 해마다 ‘세계 행복의 날’(3월20일)을 맞아 세계 행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유엔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공식 천명한 건 2012년. 전세계를 몰아친 금융위기가 기존의 성장 지상주의의 한계를 되돌아보게끔 한 게 직접적 배경이다. 성장 담론이 굳건하게 떠받들던 이른바 ‘낙수효과’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패러다임 전환에 한몫했다. 성장할수록 외려 불평등만 커지는 현실 앞에서 성장과 행복의 괴리에 뒤늦게나마 눈뜬 셈이다.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갈래의 ‘행복의 경제학’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경제와 행복의 문제를 파헤친 <행복, 경제학의 혁명>(2008, 브루노 프라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2012, 로버트 스키델스키 외) 등의 화제작도 잇따라 쏟아졌다. 경제적 성과를 측정·비교하는 대표적 잣대였던 국민총생산(GDP) 개념도 도전받았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6차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포럼에선 ‘경제성과와 사회발전 측정에 관한 고위 전문가그룹 보고서’가 공식 발표된 바 있다. 지난 5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이뤄진 논의 결과를 집대성한 성과물이다. 보고서는 “(기존 정책 방향이) 국내총생산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2008년의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뿐더러 그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담았다.

한국 행복도, 덴마크 하위 20%보다 낮아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행복을 공공 정책의 목표로 내세우는 목소리는 나라 안에서도 부쩍 커졌다. 지난해 4월엔 200여명의 발기인이 모여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을 출범시켰고, 10월엔 전국 4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를 꾸리기도 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모든 정책에 행복영향평가 심사를 도입하고, 행복지표 개발과 행복지수 조사·측정 등에 나서도록 하자는 게 주된 활동 목표다. 이 밖에도 전북 전주시는 지속 가능하고 행복한 도시를 꿈꾸는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를 올해로 5회째 개최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도 ‘행복 담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엔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이 주관하는 세계 행복의 날 기념 심포지엄이 ‘국민총행복과 행복세’란 주제를 내걸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 사회는 지금 균형과 공평, 포용 발전이 무엇보다 시급한 때”라며 “이를 위해선 행복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공공 정책의 지향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주제발표를 맡은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연구센터장은 한국과 덴마크의 분위별 행복도를 눈여겨보라고 주문했다. 덴마크는 행복도 조사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다. 우선, 한국 국민의 평균 행복도는 덴마크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하위 20%(1분위)보다도 낮았다. 덴마크에서 전체 인구의 20%(5분위)가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것도 이채롭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행복도가 낮을뿐더러 행복도 격차가 유독 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행복 불평등’이다. 행복도 격차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우리나라의 순위는 더 낮아진다. 조병구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지식협력단지운영단장은 “행복 취약계층은 기회 및 성과의 불평등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계층 상승 이동 가능성은 더 낮게 본다”며 “평균적인 행복 수준을 높이는 일보다 격차 해소에 더 역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의 <행복, 경제학의 혁명>.
스위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의 <행복, 경제학의 혁명>.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금’ 가능할까

관건은 재원. 하나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게 ‘행복세’다. 사회 구성원의 복지 향상에 쓰이는 복지목적세임을 분명히 못박아 두되, 최상위 소득 및 자산 계층에만 부과하자는 게 뼈대다. 당장은 보편적 증세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해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유세’와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

이날 행사에서 ‘국민총행복을 위한 행복세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상위 1% 소득 및 자산 계층, 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국민의 총행복을 증대시킬 것”이라며 “자신과 국민총행복을 위해 솔선수범하도록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유세라는 명칭이 주는 ‘징벌적’ 성격을 벗어나자는 뜻으로, 이를테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금’이라 할 만하다.

일부 집단에만 부과하는 복지목적세 사례는 여럿 있다. 프랑스 정부가 매출 규모 상위 25% 기업을 대상으로 비임금 근로자의 연금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1970년 도입한 기업사회연대세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감면에 쓰이는 복지목적세가 강화됐다. 특히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는 이른바 ‘버핏세’ 논의도 활발하다.

그럼에도 행복을 공공 정책의 목표로 삼자는 행복 담론 앞에 놓인 과제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한계도 뚜렷한 편이다. 행복 담론이 계층간·지역간 격차 확대 등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행복을 공공 정책이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철학으로 삼을 순 있을지언정 구체적 정책 목표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이날 행사에서 토론에 나선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은 “행복이 공공 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구체적 목표와 수단, 프로그램이 반드시 함께 주어져야 한다”며 “그게 과연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무엇이 필요할지 등이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행복이란 단어가 자칫 겉치레 수사(레토릭)에만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국민 행복을 국정 목표로 내건 바 있다. 2013년 초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 제목은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였다. 행복주택 등 행복이란 수식어를 단 각종 분야별 정책이 임기 내내 쏟아져 나왔으나, 정작 불평등 완화와 격차 해소 등과는 대부분 거리가 멀었다.

행복, 담론 영역에 그쳐선 안 돼

행복세 방안 역시 현재로선 채워야 할 빈구석이 많다. 국내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구체적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작업이 앞서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중장기 세제 개혁의 큰 틀 안에서 보편적 증세와 관계 설정도 과제다.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매기는 데 대해 최상위 계층이 부당함을 느낀다 치자.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이라 섣불리 단정하는 건 무리다. 징벌적 성격을 덜어주려다 외려 공정하지 못하다는 역공을 불러올 공산도 크다.

현대 자본주의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커다란 위기와 여러 차례 맞닥뜨려야 했다. 위기가 터질 때마다 성장 중독과 물질 숭배, 과도한 탐욕이 위기를 불러왔다며 도덕과 윤리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으레 높았다. 폴 콜리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지난해 말 출간해 화제를 모은 <자본주의의 미래>도 윤리의 회복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해낼 대안이라 주장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진단과 해법은 자칫 위기의 근본 원인에 눈감고 임시처방에 그칠 우려가 크다. 핵심은 소득과 자산을 넘어 주거·시간·교육·건강·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행복을 앗아가는 불평등의 실태를 밝히는 일이자, 불평등을 키우는 사회 구조를 대수술할 구체적 정책과 수단이다. 이른바 행복의 경제학이 단지 담론 영역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복지국가 전략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이유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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